비행기가 이륙하면

1.

비행기가 이륙하면 죽음을 생각한다. 이번 추석엔 비행기로 고향을 오갔으니 이미 두 번. 엄마는 과로와 운동 부족과 가족의 내력으로 높아진 내 혈압을 수시로 쟀다. 혈압에 좋다는 자주색 양파즙을 먹이기도 했다. 덕분에 세 번, 네 번, 다섯 번.

명절은 어쩌면 식탁 풍경. 흰쌀밥 위에 가시 바른 갈치살이 얹혔다. 이젠 애도 아닌데. 포슬한 부채감이 끈적하게 입 안을 굴렀다. 안주 삼아 거봉을 씻어주는 때도 있었다. 이것마저 아이를 다루는 심정일까. 그렇게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사뿐 몸을 일으킬 때의 바람처럼, 당신의 사랑이 수시로 불었다. 당신이 다정해서 죽음을 생각했다.


2.

질끈 눈 감은 새벽 같을까. 모르지. 그건 오래전에 도망친 공포였으니. 열두 살이었나. 지금 곁에서 코 골며 잠든 사람들도 언젠간 사라질 거란 생각 때문에 잠을 못 잤다. 미래가 과거만큼 무서웠다. 시간을 잊어야 했다. 십 년 뒤 말고 일 년 뒤, 온 가족이 적당히 늙을 때까지만 생각하면 괜찮았다. 무서운 건 싫은 것이기도 해서 앎의 취향도 바꾸고 싶었다. 추상으로 쉽게 비약하지 않기를. 우아한 말장난으로 없음을 꾸미지 않기를. 세계는 비루하나마 엄연히 있으므로, 내 삶의 준거 또한 그리로 뿌리내리기를.

그렇지만 가끔은 비행기가 이륙한다. 고목을 넘어 구름 위로. 죽음은 여전히 멀고 남겨진 마음들만 내려다보이는 애매한 고도로. 성층권엔 바람이 없어서 구름 아래가 더 무섭다. 겪을 일보다 겪게 할 일이 더 명백하다. 갈 곳을 잃은 바람의 회전. 반기는 이 없는 뜨끈한 마음. 이를테면 계절을 착각하고 핀 가을의 벚꽃. 외면하던 상념이 짝사랑의 탈을 쓰고 습격한다.


3.

문학적인 기분 앞에선 도리가 없다. 속된 마음이 낯빛을 바꿔 춤을 춘다. 그런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일까. 몇 달 째 일하고 먹고 자는 게 전부인데. 금요일 토요일엔 엉망으로 취하고 일요일엔 미룬 일을 처리하다 울 것 같은 기분이 되는데. 예쁜 문장을 파는 사람도 삶마저 예쁘진 않던데. 달뜬 마음을 뽐내다 말긴 싫은데.

도리가 없으니 쓸모를 다시 헤아려볼까. 말의 필터로 생애를 꾸미는 건 말고. 소란 속에서 홀로 침착한 것도 말고. 그렇다면 서정의 소용은 차라리 우는 사람을 보면 같이 울어버리는 일. 무른 마음으로 손을 뻗는 단단한 나를 상상하는 일. 정물 이후의 풍경에 대비하는 일. 죽음 앞에서 셈 없이 사랑을 교환하는 일. 그렇게 시시한 일 년들을 포개어 십 년 치의 긍지를 만드는 일.


비행기가 다시 구름을 가른다. 하얀 땅이던 것이 물안개로 솜사탕과 깃털로 줄어든다. 비행기가 착륙하면 나는 죽음을 거꾸로 센다. 셋, 둘, 하나. 이제는 기분의 쓸모를 실험할 차례.


Caetano Veloso, Gilberto Gil, 〈Desde Que o Samba é Samba〉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