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항관계

어릴 땐 손을 가만히 못 뒀다. 텔레비전 아래 서랍장 문이 뜯길 때까지 여닫았다. 엄마는 엉겨 붙는 손가락을 자주 떼어냈다. 치대지 말라는 경상도 사투리를 그때 들었다. 거리 두는 법을 몰랐다. 손 뻗은 전부가 내 세계였고 우주엔 내 마음 하나만 있었다. 손 안 닿는 곳곳에도 마음들이 흩뿌려져 있다는 사실은 책으로만 배웠다. 실감하게 된 건 손에 잠깐 닿은 […]

Meu amigo Radamés

시월이었다. 둘만 있던 카페에서 이 곡만 끝없이 반복된 날이 있었다. 조빔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쓴 곡이라고 했다. 같은 테마를 반복하는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더니 언제 끝나고 다시 시작하는지도 모르게 되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저녁이었다. 그 영원 속에 갇히고 싶었다. 그런 욕심이 생기자 모든 게 끝나리란 예감이 뒤를 따랐다. 어렸을 때는 가족과 노래방을 가는 게 무서웠다. […]

戀書 3

공기의 결을 따라 하늘 위 검은 곳으로 솟아오르는 것들이 있다. 공들여 건축한 우주선, 수신인을 모르는 시그널, 우리가 되는 꿈을 꾸는 실의 끝, 셋 다인 것들이 있다. 인칭을 지우다 독백이 되었다. 오지 않는 답장을 기다리다 독백이 되었다. 저주하는 무속인의 웅얼거림이었고 회개한 자의 습한 손이었으며 차라리 가난한 사내의 구걸이었던 문장들이 묵묵히 비워지다 사라진다. 어떤 일도 풀거나 끊지 […]

戀書 2

사소한 불가능들에 내기를 걸어보는 것에서부터 이야기를 겨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속된 말들을 지겹게 덧댄 후에는 우습지 않은 말들을 만날 것이다. 가을바람에 다 날아가고 남은 것들을 겨울에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 믿는다는 말의 뜻을 옮겨서라도 믿고 싶은 마음을 믿음이라고 적는다.  나을 수 없는 징후를 견디는 나무의 형상을 생각하고 외로운 공기의 밤을 생각하고 생각하는 나의 그림자를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