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아름답고 치열한: Chico Buarque, 〈Apesar de Você〉 2024년 12월 22일2024년 12월 22일 게시됨:노래 브라질 음악을 다루는 순간만큼은 아름다움에 천착하고 싶었다. 궂은 연말, 계엄 선언과 탄핵안 가결을 겪고도 결말을 모르는 12월에도. 미를 좇는 일이 한갓지다는 내 안의 의심에 맞서 아름답고 치열한 옛 노래를 옮긴다. 미와 옳음이 둘이 아니던 시절, 오래된 지혜를 구하는 마음으로.
가족의 닮음이 시대의 다음: Bala Desejo, Dora Morelenbaum 2024년 11월 8일2024년 11월 11일 게시됨:노래 Dora Morelenbaum이 새 음반을 냈다. 나는 그를 그의 부모 Morelenbaum 부부로 먼저 알았다. 본격적으로 좋아하게 된 건 동료들과 만난 프로젝트 그룹 Bala Desejo였다. 가족의 날실과 우정의 씨실이 기운 새 시대의 브라질. 그런 근사한 현재를 나누고 싶었다.
유목하는 식인주의: Gilberto Gil의 노래들 2024년 10월 11일2024년 10월 13일 게시됨:노래 Gilberto Gil가 곧 한국을 찾는다. 서울숲재즈페스티벌 공연을 위해. 틀림없이 근사하겠지만 이미 아쉽다. 60년도 더 된 이력이 60분 남짓에 온전히 담기진 못할 테니. 예정된 미련을 핑계로 글을 보탠다.
환희의 마술적 번역: Sérgio Mendes의 부고에 부쳐 2024년 9월 11일2024년 9월 12일 게시됨:노래 2024년 9월 5일. Sérgio Mendes가 세상을 떠났다. 그를 다루는 첫 글이 추모가 될 줄은 몰랐다. 비감은 미뤄두고 빛나는 순간들에 대해 쓴다. 그의 음악은 슬픔에도 일말의 환희를 드리우는 쪽이었으므로.
어린이에게 상실과 용기와 겸허를: Adriana Partimpim의 동요들 2024년 8월 7일2024년 11월 6일 게시됨:노래 대중음악가의 동요를 좋아한다. 평소보다 품을 들여 친절해진 작은 세계들이 좋았다. 학교에서 배운 김민기의 〈백구〉. 어릴 적 누나가 불러준 산울림의 〈산 할아버지〉. 계피의 목소리로 처음 들은 〈봄〉 같은 노래들. 동요라 해서 맑고 고운 것만은 아니었다. 그 곁에 웅크리고 앉은 설움들도 있었다. 일 떠난 엄마와 홀로 남은 아이(섬집 아기). 못 가진 강변을 그리워하는 마음(엄마야 누나야). 어린이의 영토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