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소설의 연대기를 거꾸로 올라가고 있다. 사멸하는 언어의 박물관에서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와 낱말카드를 만지작거린다. 몇 살의 문체를 갖고 싶은지 생각해봤다. 투명한 어린아이의 목소리, 핏줄이 툭툭 튀어나오는 성대, 말라가는 여자의 하얀 뼈, 배운 티가 나는 서른 즈음의 필체. 고르고 고르다 내 글은 어느것도 아니라고, 색도 냄새도 없다고 착각할 때쯤 내 나이의 내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많이 써 볼 생각이다. 슬쩍 여기저기 몰래. 읽고 쓰고 하다가 밥 벌어먹을 길 정도는 구하고 다시 읽고 쓰면 되겠다는 계획만 세워 놓았다. 글로 쓴 세계와 밥 먹여주는 세계, 또 필요한 여러 겹의 세계들을 겹쳐놓아도 미치지 않을 시점을 구하려 짱구를 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