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손을 가만히 못 뒀다. 텔레비전 아래 서랍장 문이 뜯길 때까지 여닫았다. 엄마는 엉겨 붙는 손가락을 자주 떼어냈다. 치대지 말라는 경상도 사투리를 그때 들었다. 거리 두는 법을 몰랐다. 손 뻗은 전부가 내 세계였고 우주엔 내 마음 하나만 있었다. 손 안 닿는 곳곳에도 마음들이 흩뿌려져 있다는 사실은 책으로만 배웠다. 실감하게 된 건 손에 잠깐 닿은 사람들 덕이었다. 사랑도 증오도 주지 않던 사람들. 나 따위의 회전에는 무심하게 공전하던 사람들. 성장은 그들에게 지을 표정을 익히는 일이었다.
새해엔 운동을 시작했다. 무르고 늘어진 몸을 작고 단단하게 만들고 싶었다. 몸집을 키우려는 사내들의 꿈을 반대로 꿨다. 누구에게도 먼저 연락하지 않았고 가벼운 웃음소리도 바꿨으면 했다. 최소한의 공기만 흔들고 싶었다. 창문이 없는 방이 되고 싶었다. 별자리는 어디까지나 눈으로 그리는 가짜 선이었으므로, 선을 말하는 순간에도 점에 대해 생각했다. 점으로 줄어들다 식어가는 항성의 생애를 읽었다.
오래된 선이 있었다. 가끔은 비둘기가 날아앉았다. 사람을 피하지 않는 비둘기와 비둘기를 피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제는 피하지 않는다. 도시의 공포가 하나 줄었다. 그러나 두려움이 모두 사라진 도시만은 갖지 못할 것이다. 겁이 없는 시민에겐 도시조차 필요 없기 때문이다. 번잡한 사연들로 얽히지 않을 바에야 삶마저 소용없는 것처럼.
카페에서 이별하는 연인을 봤다. 끝내는 쪽이 운다. 결말을 미리 아는 사람만이 울 준비가 되어 있다. 함께 우는 저들은 좀 나을까. 이별이기는 한 걸까. 모르는 마음들을 멋대로 가늠하다 그만뒀다. 소용없는 편지들을 다 잊을 무렵에나 물어볼 일이다.
Casker, 〈편지〉, 《여정(旅程)》,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