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나라로: Elis Regina, 〈Sai Dessa〉

Copacabana, Rio의 풍경
Copacabana, Rio.

여행

유월과 칠월 사이, 짧은 브라질 여행을 다녀왔다. 오랜 꿈이었다. 노래로만 품던 나라를 온몸으로 겪고 싶었다. 주변의 반응은 비슷했다.

“혼자 브라질은 너무 위험하지 않아?”

겁을 이기는 사랑으로 길을 떠났고 한껏 웅크린 여행 끝에 이제는 답할 수 있다. 브라질은 아름답고 또 위태로웠다고. 사랑과 치안의 눈을 번갈아 떠야 했다고. 그치만 행복했다고. 자주 깜빡인 눈 틈새로 미적 감흥이 끝 모르게 새어들었다고.

Elis Regina, 〈Aquarela do Brasil(브라질의 수채화)〉

아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이토록 근사한 나라에서 맘 편히 카메라를 꺼낼 수 없다니. 염려의 눈을 뜨면 세계는 공포로 변한다. 지역 축제엔 늘 무장 경찰이 함께였고 그럴 때면 불쾌한 안도감이 찾아들었다. 분했다. 사랑과 찬미 사이로 스민 폭력을 반겨야 한다니. 무섭다가도 짜증이 났고 끝내는 슬퍼졌다.

이 땅을 노래하는 이들도 그랬을 테다. 순정을 흐리는 얼룩들이 지겨웠겠지. 예쁜 것만 뜰채로 건져 올려 부르고 싶었겠지. 브라질 사람들도 차마 살아본 적 없는 꿈의 브라질, 추상으로 닿은 유토피아. 내가 사랑한 것도 그런 가상이었다.

노래

여행 내내 Elis Regina의 〈Sai Dessa〉를 들었다. 노랫말 때문은 아니었다.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음반, 당시 남편이었던 César Camargo Mariano가 편곡한 그루브가 좋았다. 훵크로 긁어대는 기타와 베이스, 브라질임을 증명하듯 밀어가는 화성, 알알이 박힌 퍼커션, 한 줄 한 줄 다른 감정을 싣는 가창까지.

가사를 제대로 읽은 건 귀국한 뒤였다. 그제서야 알았다. 노래는 여행 내내 나와 같은 심정이었다는 것을. 화자는 꿈을 꿨다고 둘러대며 유토피아의 명세서를 읊는다. 슬픔과 기쁨은 있어도 경찰과 도둑은 없는 나라. 축제는 끝이 없고 맥주가 물처럼 쏟아지는 나라. 배우지 않고도 사랑과 아름다움과 환상을 짓는 나라.

Elis Regina & César Camargo Mariano
Elis Regina & César Camargo Mariano

그러나 동시에 노래의 심경은 여행객의 불평보다 복잡하다. 군부 독재는 끝날 듯 끝나지 않고 동지들의 망명은 끝났지만 검열은 여전하던 때, 소망은 소망이기에 불온했다. Elis는 쉬지 않고 노래하는 쪽을 택했다. 민중이며 예술가인 것이 죄가 되지 않는 나라를. 수렁에 빠질 저들보다 높은 곳에서 빛날 우리를. 그의 노래엔 겁쟁이의 투정도 담대하게 만들 환한 기운이 함께였다.

꿈의 나라로

2025년. 독재는 끝나도 폭력은 남았다. 브라질에도, 한국에도, 곳곳 위태로운 나라들에도. 평화는 잡힐 듯 잡히지 않고 꿈은 그만큼 무력하지만 그러므로 꿈은 계속된다. 닿지 못할 곳이어서 몇 번이고 가리킬 수 있다. 같은 마음을 앓는 이들끼리, 티켓도 공항도 없는 비행기를 타고서, 꿈의 나라로.

여행이 일러준 건 그런 빛의 자취들이었다. 그 빛을 나누고 싶어 가사를 옮겼다.

Sai Dessa (거기서 나와)

▶ 0:28

Sonhei que existia uma avenida

Sem entrada e sem saída pra gente comemorar

Toda hora, todo dia e toda vida

Na tristeza e na alegria, sem plateia e sem patrão
어떤 거리가 있는 꿈을 꿨어
기념하는 우리를 위해 입구도 출구도 없는 [거리]
매시간, 매일, 그리고 평생
슬픔과 기쁨 안에서, 관객도 사장도 없이

▶ 0:45

Hoje eu sonhei que cerveja sai na bica

No banheiro não tem fila nem existe contramão

E que o trabalho é ali na nossa esquina

E depois do meio dia, nem polícia e nem ladrão
오늘 나는 맥주가 수도꼭지에서 쏟아지는 꿈을 꿨어
화장실엔 기다리는 줄이 없고 역방향도 없어*
일터는 여기 우리 골목 어귀에 있고
정오가 지나면 경찰도 도둑도 없는

* 질서를 어기는 이가 없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으나, 어길 질서조차 없는 공간에 대한 묘사로도 읽힌다.

▶ 1:03

Sonhei, como faço todo dia

Como você não sabia, meu senhor, não levo a mal

A beleza, o amor, a fantasia

O que tece e o que desfia não se aprende no jornal
꿈을 꿨어, 매일 그렇듯
당신은 몰랐으니, 선생님, 나쁘게 듣지 않아요
아름다움, 사랑, 환상,
[그들을] 짓고 푸는 일은 신문에선 배울 수 없지

▶ 1:20

Hoje eu sonhei, mas não vou pedir desculpas

E nem vou levar a culpa de ser povo e ser artista

Sem essa, moço, por favor, não crie clima

Seu o buraco é mais embaixo

Nosso astral é mais em cima
오늘 나는 꿈을 꿨어, 그치만 용서를 구하진 않을 거야
민중이 되고 예술가가 된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거야
그만 둬, 거기, 제발, 그런 분위기를 만들지 마
당신의 수렁은 더 깊은 곳에 있어*
우리의 기운은 더 높은 곳에 있어

* 문제가 생각보다 깊고 복잡함을 뜻하는 관용적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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