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의 필진이 된 지 반 년이 되어간다. 장재인, FKA Twigs, 자이언티, 아이유에 관해 썼고 이승열, 파라솔, 나팔꽃, 오타키, 영기획에 관해 짧게 썼다. 웨이브의 2015 연말결산을 위해 국내·외 음반과 싱글을 꼽았다. 역사에 남길 명작보단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것들을 생각하며 골랐다. 지면에 쓰지 못한 감상을 짧게나마 더한다.
해외 음반
1. Joanna Newsom, 《Divers》, Drag City.
고풍스러운 품위는 여전하지만 괴팍함은 줄었다. 하프와 막소폰과 멜로트론 소리가 별처럼 쏟아진다.
2. FKA Twigs, 《M3LL155X》, Young Turks.
weiv에 리뷰를 썼다. 나중에 프로듀서인 Boots가 낸 솔로 음반을 듣고 나니, 이 음반의 성취를 FKA Twigs에게 좀 더 돌려도 좋겠단 생각이 든다.
3. Grimes, 《Art Angels》, 4AD.
주류 팝 음악마저 서브 컬쳐 대하듯 집어삼킨 잡식성의 음반이다. 혼종의 천사들이 팝의 미덕을 고스란히 담았다.
4. Kendrick Lamar, 《To Pimp A Butterfly》, Top Dawg.
힙알못도 이건 알아듣는다. 알아먹도록 강제하는 음악가가 몇 있었다. 가령 2010년과 2013년의 칸예가 그랬다. 2015년엔 누가 뭐래도 켄드릭 라마다.
5. Sufjan Stevens, 《Carrie & Lowell》, Asthmatic Kitty.
포크알못도 이건 알아듣는다. 2015년엔 잠들지 못한 새벽마다 찾았다.
6. Four Tet, 《Morning/Evening》, Text Records.
포텟의 부모님은 여태 그가 내놓은 음반 중 이번이 가장 좋다고 했다. 과연 부모님은 뻥을 치지 않으신다. Omar Souleyman와는 아랍의 전통 춤곡 답케를 전자음악으로 돌려놓더니 이번엔 인도 음악을 샘플링했다.
7. Hot Chip, 《Why Make Sense?》, Domino.
흑인 음악을 반쯤 빌려온 신스 그루브에 펫 샵 보이즈 마냥 얇은 백인 남성의 가창을 얹었다. 하던 대로 능청스러운 댄스 음반이다.
8. Oneohtrix Point Never, 《Garden of Delete》, Warp.
전작 《R Plus Seven》과 비교하자면 언제고 전작의 편에 설 것이다. 그러나 이번 기획을 버릴 수도 없다. EDM의 관습마저 끌어들여 가며 몰아붙인 거친 질감으로만 담을 수 있던 콘셉트를 존중한다.
9. Holly Herndon, 《Platform》, 4AD.
원본을 모를 정도로 쪼개지고 재배치된 소리들이 흩날린다. 인터넷에서 채집한 소리들이 뒤엉킨단 점에선 디지털의 자기 지시를 보는 듯하다. 이 분야에선 내 취향을 가장 직격했다.
10. Jamie XX, 《In Colour》, Young Turks.
〈Gosh〉에서부터 결판이 났다. 밴드에선 못하던 총천연색 취향을 쏟아 부은 한 장.
11. Ibeyi, 《Ibeyi》, XL.
쿠바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사는 쌍둥이 자매 듀오의 첫 음반이다. 제국의 언어인 영어와 식민지의 언어인 요르바어로 노래한다. 카혼과 피아노가 최소한의 소리로 강렬한 감정을 발산한다.
12. 北園みなみ, 《Lumiere》, Polystar.
일본 시티팝의 현재, 연약한 소리를 엮어 단단하게 건축한 안락한 세계가 여기 있다.
13. Ash Koosha, 《GUUD》, Olde English Spelling Bee.
찢어지는 소리가 주는 쾌감만 생각하며 골랐다. Arca가 올해 받은 주목을 나눠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그 자리에 대신 놓았다.
14. Julia Holter, 《Have You In My Wilderness》, Domino.
내한까지 온 덕에 이미 많은 말이 나왔다. 하프시코드 소리가 가을과 잘 맞았다. 전작이 더 좋았단 말도 듣고 다음이 더 나을 거란 말도 듣는다. 후자에 특히 동의한다.
15. Tortured Soul, 《Hot For Your Love Tonight》, Dome Records.
Cooly’s Hot Box부터 시작해 이 밴드로도 세 번째다. 애시드 재즈, 디스코, 하우스의 골격을 지킨 채로 업데이트를 꾀한 음반이다. 무엇보다도 15년 3월 세상을 뜬 Ethan White의 연주가 담긴 마지막 음반이다. 고르지 않을 수 없었다.
해외 싱글
1. Alice Glass, 〈Stillbirth〉, Self-released.
트위터에 썼던 것을 한 문단으로 모았다.
크리스탈 캐슬에서 탈퇴한 앨리스 글래스가 처음으로 낸 싱글이다. 팀의 프로듀서 이든 캐스는 탈퇴한 앨리스의 기여를 깎아내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썼다고 했던 가사와 멜로디가 실은 자기 것이었다는 것이다. 진실은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내가 좋아했던 크리스탈 캐슬은 이든 캐스의 신곡이 아닌 〈Stillbirth〉에서 압도적으로 빛난다. 몰아치는 가운데 남는 기묘한 처연함은 이 곡에만 있다. 앨리스는 당연히 반발했고 이든 캐스는 곧 글을 삭제했다. 여성의 기여는 이런 식으로 늘 절하당한다. 마침 〈Stillbirth〉는 폭력적인 관계에 놓인 여성을 위한 노래다. 수익은 가정폭력과 성폭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을 위해 기부된다고 한다.
2. Panda Bear, 〈Boys Latin〉, Domino.
켜자마자 쌓이던 긴장이 상쾌하게 터지는 1분을 생각한다. 속도를 바꿔가며 리듬을 꼬아놓던 신디사이저가 화성과 리듬을 찾아가고, 뜻 모를 보컬 샘플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빚는다. Andy Stott의 리믹스도 챙겨들으면 더 좋겠다.
3. CHVRCHΞS, 〈Clearest Blue〉, Virgin.
음반으로선 기대 이하였지만 이 곡만큼은 올해의 싱글이었다. 두근두근한 신스의 기력을 2분이나 모은 빌드업을 지나 폭발하는 한 방을 잊지 못한다. 올해의 알람이기도 했고 기운을 내서 걸어야 할 때마다 찾아 듣기도 했다. 같은 음반의 〈Bury It〉과 들어도 좋고, Depeche Mode의 〈Just Can’t Get Enough〉를 생각해도 좋겠다.
4. Neon Indian, 〈Annie〉, Mom+Pop.
처치스와 함께 올해의 신스팝으로 꼽는다. 2011년엔 준수한 칠웨이브 음반을 내놓더니 이번엔 베이스 음역을 부풀린 복고 그루브다. 음반은 가을에 나왔지만 내겐 싱글이 나왔던 여름의 곡이다. 무더운 낮에도 비가 쏟아지는 새벽에도 좋았다.
5. Tame Impala, 〈Let It Happen〉, Modular.
뭉툭한 베이스를 8분이나 반복하는 가운데 몇 개의 신스 주제가 곡을 이끄는데 그게 하나같이 좋다. 〈‘Cause I’m a Man〉도 함께 들으면 좋겠다. 이들이 커버하기도 했던 Michael Jackson의 〈Stranger In Moscow〉가 대번 떠오르는 발라드다.
6. 矢野顕子, 〈Tong Poo〉, Speedstar Records.
야노 아키코가 부르는 〈Tong Poo〉는 어떻게 해도 좋다. 이번에도 그랬다.
7. Joe Barbieri, 〈Itaca〉, Microcosmo Dischi.
이탈리아에서 브라질 음악을 하면 이렇게 된다. 신비로운 신스와 첼로가 들리는가 싶더니 나일론 기타가 이끄는 화성이 취향을 탕탕 저격한다. 이탈리아어를 배워 따라 부르고 싶을 정도로. 고맙게도 CNL 뮤직이 정식 라이센스로 들여왔다. 더 많이 들려지면 좋겠다.
8. The Bird and The Bee, 〈Recreational Love〉, Rostrum Records.
리스트에 꼽은 모든 노래 중에서 가장 많이 따라 부른 곡이다. 간소한 듯 빈틈없이 채운 리듬이 유려한 가창을 안정적으로 떠받친다.
9. Tuxedo, 〈The Right Time〉, Stones Throw Records.
누 디스코, 일렉트로 훵크는 여전히 인기지만 딱 하나만 꼽자니 2015년엔 이 곡이었다. 찐득한 베이스만 들어도 행복해진다.
10. 椎名林檎, 〈長く短い祭〉, EMI Records Japan.
팬이라서 꼽았다. 시이나 링고를 들으며 취향을 세워온 지도 10년이다. 변함없이 욱일기를 사랑하는 이 사람이 여전히 못마땅하지만, 곡마저 미워하기엔 늦어 버렸다. 이 싱글과 커플링 곡은 밴드를 끝장내면서까지 하려던 음악의 정체를 딱 두 곡으로 요약했다.
11. Empress Of, 〈How Do You Do It〉, Terrible Records.
첫 정규음반을 내면서 전엔 없었던 어두운 색채를 얻었다. 그중 제일 경쾌한 곡을 골랐다. 이게 괜찮았다면 더 지독해진 〈Water Water〉, 〈Kitty Kat〉도 들어보길.
12. Squarepusher, 〈Rayc Fire 2〉, Warp.
언젠가부터 스퀘어푸셔는 실망하기 위해 듣는 퇴물 취급을 받아왔다. 이번엔 절치부심이 느껴진다. 그래선지 음반 전체로는 좀 과하지만 떼어놓고 들으면 괜찮다.
[리빙 포인트] 빠르게 달려야 할 때 DnB의 BPM으로 내달리는 이 곡의 우당탕탕을 들으면 좋다.
13. Passion Pit, 〈Whole Life Story〉, Columbia.
패션 핏의 3집은 2집과 비슷한 인상이었다. 이제 1집의 〈Little Secrets〉 같은 청량감은 다시 들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토록 따뜻한 신스팝 역시 패션 핏만의 것이다.
14. Lunchmoney Lewis, 〈Bills〉, Kemosabe Records.
돈 벌러 가는 모두의 출근길에 권하는 에너지 드링크. ‘나 청구서 있어, 돈 내야 해’, ‘먹여 살릴 입이 있어’ 같은 가사를 이렇게 신나게 불러버린다. 세계를 바꿀 위대한 예술은 아니지만, 뭐 어떤가.
15. Will Butler, 〈Anna〉, Merge Records.
아케이드 파이어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게 분명하다. 대형 프로젝트를 끝낸 음악가가 장난처럼 던져놓은 능청스런 소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