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근황
듣고 쓰는 게 무서웠다. 좋은 글을 바랄수록 더 그랬다. 단단한 논증과 단정한 말씨로 눌러 쓴, 힘껏 다정한 문장들을 갖고 싶었다. 의미를 벼려 좋아하는 리듬과 온도에 닿고 싶었다. 그러려면 기력이 필요했다. 몸을 덥히고 숨을 고를 여유가 필요했다. 처음엔 그럴 시간이 없었고 나중엔 그럴 자신이 없어졌다. 느낌은 단어를 밟고 피어나는 것이기도 해서, 쓰지 않으니 사랑하는 마음도 줄었다. 쉽게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이 못내 부러웠다. 사랑을 쓰지 못해 사랑하겠단 다짐만 써왔다.
되는대로 쓰기로 하면 되는 걸까. 2년 전에도 그렇게 다짐했었는데. 잘 안 됐다. 이미 썼던 글부터 부끄러웠다. 그렇게 쓰진 말 걸. 뭘 좀 알고 나서 쓸 걸. 글은 남고 나는 변한다. 어릴 때 쓴 일기를 뒤늦게 들키는 기분이 싫었다. 못 다듬은 스케치가 낯선 이에게 배송될까 겁났다. 누가 보면 어쩌지. 모자란 나를 들키면 어쩌지. 그래서 일기를 미뤘다. 개학이 없는 방학이었다.
2. 첫 마음을 쓰자
그러니 이번엔 다짐을 바꿔 써본다. 첫 마음을 쓰자. 사랑이 태어나면 미처 자라기 전에 사진을 찍자. 그리고 사진 아래에 적어두자. 이건 어디까지나 첫 마음이라고. 이 마음의 끝이 어떤 모양일지는 나도 아직 모른다고. 이별을 모르고 쓴 연서라고. 마음이 달라지면 두 번째 마음을 쓰자. 고쳐 쓰고 이어 쓰는 웹의 가능성을 믿자. 썼다 지운 자국도 가끔은 예쁘고 애틋하니까. 100원짜리 동전이 하나 더 남은 오락실의 어린이처럼, 두 번째 마음이 있을 거란 용기로 첫 마음을 쓰자.
노래를 듣고 쓰다만 첫 마음부터 마저 써봐야지. 창피한 첫 마음들은 다시 써야지. 그러다 보면 쓰는 일도 가끔은 무섭지 않겠지. 간지러운 기분으로 마음이 환해지는 날도 늘겠지. 그런 빛이 새어 나오는 날이면 해어진 삶도 잠깐 근사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