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벨벳, 〈Queendom〉을 들은 첫 마음: 넓게 또 좁게, 위로 또 아래로

레드벨벳의 〈Queendom〉을 들은 첫 마음을 씁니다. 노래는 21년 8월 16일에 나왔고,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더 듣고 더 알고 나면 달라질지 모르지만 처음 써보는 마음은 우선 이렇습니다.

1. 넓게 또 좁게

멜로디가 빛나는 곡인데 이상하게 공간부터 들렸다. 뿌연 앰비언스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하는 첫 3초부터였을까.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 지금부터 공간 놀이를 시작할 거라고. 내 손 꼭 잡고 따라와 보라고.

비교적 얌전한 초반부를 지나 힘이 실린 후렴을 만났다. 소리가 쏟아지면서 공간도 함께 출렁였다. 아래로는 퓨처 하우스의 베이스가 공간을 단단하게 붙드는데, 위로는 신스가 공간을 한껏 넓혔다. 신스의 음표가 늘어나면 공간은 뿌옇게 더 흐려진다. 그래도 여기까진 익숙했다. 케이팝에서 종종 듣던 공간감이 말끔하게 정리된 형태 같았다.

이상한 기분은 “ladida-do, ba-badida” 주문과 함께 찾아들었다. 소리는 더 세지는데 공간은 더 좁아졌다. 주문은 원래 노래하던 위치를 벗어나 더 가까이에서, 더 울림 없이 납작하게 꽂혔다. 가짜 브라스 같은 신스까지 가세하니 전까지 들리던 공간감이 꼭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넓은 3차원 댄스홀 대신 2채널 스테레오를 실감하게 됐다. 몰입이 끝나자 새삼 이어폰 낀 현실을 되짚게 됐다.

레드벨벳의 주문은 이렇게 세이렌의 반대편에 선다. 듣는 마음을 현실로 옮긴다.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라니. 듣는 쾌감이 듣는 나를 조망하는 메타적인 경험이기도 하다니. 크고 넓어지기만 하던 케이팝의 공간 놀이에 다른 국면이 생겼다.

2. 위로 또 아래로

그래서일까. 분명 예쁘고 긍정적인 곡인데도 어쩐지 차분하게 들린다. 〈Russian Roulette〉이 떠오르려다가도 훨씬 침착한 기분이 된다. 공간감이 빚는 무드 탓이기도 하겠지만,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는 멜로디의 몫도 크다. “아름답게 Shining”, “색깔로 완성한”를 부를 때 보컬은 반음씩 상승하지만 “That’s Our Queendom”을 부를 때 신스는 반음씩 하강한다. 힘껏 이륙하고 얼마 되지 않아 착륙한다. 덕분에 노랫말을 듣는 마음도 더 진지해진다. 우리를 긍정하자는 선언이 다시 땅으로 내려앉는 이유를 상상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커버 아트도 그렇다. 구도는 쏟아질 듯 위태롭고 색색의 풍선조차 어쩐지 채도가 낮다. 주위엔 검은 새들이 날고 땅으로는 여러 줄 끈이 이어진다. 탁 트인 초원이지만 풍선들은 묵직한 중장비에 매여있다. 멤버들의 표정도 어딘가 결연하다. 아무리 봐도 이곳이 노랫말 속 원더랜드 같지는 않다.

대신 이런 서사를 멋대로 꾸며보게 된다. 〈Queendom〉은 행복한 결말이 아니라 그 앞의 과정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용기를 내서 “먼 기억 너머의 원더랜드”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라고. 괜찮을 거라고. “손을 맞잡”고 모이면 “비가 내려도” 무지개가 되고 축제가 될 거라고. 결이 다른 멤버들의 목소리들을 근사하게 담아낸 이 노래처럼, 함께여서 강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고. 한 번에 모든 걸 이루지 못해도 괜찮다고. “다시 한번 시작해볼까” 말할 수 있는 우리가 있다면 “그게 우리의 퀸덤”이라고.

몇 겹의 비약과 과장을 경유해, 이제 이 노래를 들을 때면 ‘이미 행복한 나’ 대신 ‘행복하려고 부단히 애쓰는 우리’를 떠올린다. 우정과 연대로 지치지 않는 우리를 떠올린다. 그런 우리가 환상이 아닌 현실이어서, 그럼에도 이토록 근사하게 들릴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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