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하라 노리유키, 《宜候》의 첫 곡을 듣는 첫 마음

마키하라 노리유키(槇原敬之)의 신보 《宜候》, 그중에서도 첫 곡 〈introduction ~東京の蕾~〉를 들은 첫 마음을 씁니다. 음반은 10월 25일 공개됐고, 주문한 음반이 한국에 도착한 건 꼭 일주일 만이었습니다. 더 듣고 더 알고 나면 달라질지 모르지만 처음 써보는 마음은 우선 이렇습니다.

1. 에어팟 프로와 공감각

에어팟 프로를 2년째 쓰고 있다. 음질보단 노이즈 캔슬링이 필요했다. 오직 음악만 듣고 싶었다. 옆집의 말소리도 옆 건물의 공사 소음도 없는, 오롯이 음악인 공간을 갖고 싶었다. 그러려면 차음이 잘 된 방과 그 안에 눌러앉을 시간이 필요했다. 작은 집과 회사를 지하철로 오가는 처지엔 어림없는 일이어서 이어폰을 샀다. 밀려드는 소음과 나 사이에 몇 겹 막이라도 세워두면 좀 낫지 않을까 하면서.

소리가 소리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걸 덕분에 다시 배웠다. 그저 바깥 소음을 녹음하고 그 역상에 해당하는 파형을 동시에 재생해 소음을 상쇄하는 것뿐인데, 묘한 압박감이 귀에 함께 전해졌다. 주변음 허용 모드도 그랬다. 바깥소리를 녹음해 더 크게 들려줄 뿐인데, 플라스틱 유닛으로 막아둔 귀가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바깥 공기도 괜히 더 차게 느껴졌다. 청각만으로 촉감도 온도도 달라지다니. 낯선 경험이었다.

공감각은 시어로만 배웠는데. 가만 보니 온 세계가 공감각이었다. 발만 시려도 온몸이 차듯, 귀의 감각도 온몸으로 옮아간다. 몸이 차면 마음도 쪼그라들듯, 몸의 기분은 태도로도 번진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인데 실감하니 새삼 좋았다. 소리의 일이 마음의 일이 되고, 마음의 일이 세계를 향할 수 있다니. 내가 사랑하는 노래들에 그런 힘이 있었다니. 논리는 성글고 가능성은 희미하지만, 그 정도면 애호가가 품을 수 있는 최선의 희망에 가까웠다.

2. 걸음에서 모험으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宜候》의 첫 곡, 〈introduction ~東京の蕾~〉 때문이었다. 분명 노이즈 캔슬링을 켜고 틀었는데, 흘러나오는 도시 소음 덕에 꼭 주변음 허용 모드를 켠 것처럼 귀가 탁 트였다(0:03). 이어폰 속 소리 풍경이 현실과 기분 좋게 포개졌다. 덕분에 노래가 품은 촉감을 가만가만 더 따라가고 싶어졌다.

선선한 생활 소음 위로 마키하라의 가창이 조심스레 얹힌다(0:18). 그는 늘 그랬듯 정직한 박자로 콩콩콩 발을 딛듯 노래한다. 그저 소음이었던 소리들도 가창을 따라 리듬을 입는다(0:24). 그러면 단출했던 노래가 꼭 행진곡처럼 들리기 시작한다. 상쾌한 기운을 믿고 조금은 더 걸어보고 싶어진다. 감각이 태도로 옮아간다.

곧이어 휘슬이 불어온다(1:01). 괜히 넓은 자연의 풍광을 상기시키면서. 음반 표지 속 푸른 물결까지 보고 나면 도시의 바람이 파도처럼 들린다. 도시였던 것들이 마법처럼 자연으로 변한다. 산책이었던 걸음도 이제 특별한 모험의 일부가 된다. 휘슬과 합을 맞추던 가창은 전자음으로 변조되고(1:41) 소리들은 저마다의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걷는 마음이 설렘으로 한창 울렁일 때, 노래는 다음 곡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이제 준비는 끝났으니 여행을 시작하라는 듯이.

3. 처음

번역기로 읽은 노랫말의 뜻도 비슷했다. 당신은 동경을 찾은 꽃봉오리 같은 존재라고. 전생은 잊었고 봄은 다가오니 이제 새로운 모험의 시작이라고. 이건 누구에게 하려던 말이었을까. 새로 태어난 아이들? 아니면 불행한 개인사를 딛고 다시 살아갈 자기 자신? 뭐든 말이 되니 답은 알 수 없지만 이것만은 알 수 있다. 그는 우리의 걸음을 처음처럼 대한다. 실은 처음이 아닐 수도 있단 걸 알면서도. 그리고 걸어보게 한다. 험한 앞길도 있을 텐데, 모른 척 탁 트인 정경만 계속 들려준다. 이런 선택이 내게는 호의와 응원으로 들렸다. 실패의 기억은 대체로 도움이 되지만, 어떤 어려운 길은 오직 첫 마음으로만 걸을 수 있으니까.

좋았던 나의 처음들을 떠올려본다. 이를테면 3월에 맞은 새 학기 같은 것들. 새로 만난 사람들과 그들이 알려준 오래된 책들, 추운 날 처음 불러 본 투쟁가와 태어나 처음 써본 연서 같은 것들. 시절은 지나고 마음은 낡는다. 그러나 어떤 소중한 것들은 계절이 돌아오듯 새것처럼 다시 피어난다.

울 것 같은 눈을 가진 사람들에게 처음의 설렘을 들려줄 수 있다면. 그런 다정을 생각하며 이 노래를 들었다.

《宜候》의 마지막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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