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벨벳, 〈Feel My Rhythm〉을 듣는 첫 마음

레드벨벳의 〈Feel My Rhythm〉을 들은 첫 마음을 씁니다. 노래는 22년 3월 21일 나왔고, 듣자마자 쓴 초고에 살을 붙였습니다. 더 듣고 더 알고 나면 달라질지 모르지만 처음 써보는 마음은 우선 이렇습니다.

첫인상

바흐를 샘플링하다니. 듣기도 전에 별로일 거란 불안이 앞섰다. 누구나 아는 그 멜로디를 쓸 수밖에 없을 텐데. 샘플로 쓰든 멜로디로 가져오든 뻔하고 촌스럽고 말 텐데.

불평할 마음으로 들었고, 예상 밖에 좋았다. 명화를 끌어온 비주얼이나 〈Queendom〉을 잇는 가사에 앞서 소리로서 좋았다. 그래서 쓰고 싶어졌다. 서사에 대한 말은 이미 많으니 가급적 소리에 대해서만. 실패의 가능성을 비껴가며 도달한 우아함에 대해 말하고 싶어졌다.

스트링 세션으로서의 바흐

‘무엇을’을 초과하는 ‘어떻게’가 있을 때 샘플링은 때때로 고유해진다. 〈Feel My Rhythm〉도 그래서 좋았다. 바흐 자체보다도 바흐를 써먹은 방식이 새삼스러웠다.

인트로를 제외하면, 이 곡에서 바흐의 멜로디는 멜로디로 쓰이지 않는다. 결정적 리프로 삽입되지도 않고 후렴 탑 라인에 인용되지도 않는다. 대신 철저히 배경에 머무른다. 주선율이기보단 차라리 스트링 세션처럼 기능한다.

그런데도 존재감이 분명하다. 프리 코러스(0:52) – 코러스(1:04) – 2절 벌스(1:30) – 브릿지(2:31) – 전조된 코러스(3:03)까지, 바흐는 송폼에 필요한 화성 전개를 유도하며 곡 전체의 감정선을 스케치한다. 이 밑그림에 색을 입히는 것도 스트링 특유의 질감이다. 여러 악기를 한데 모아 웅장하게 부풀리는 현악의 문법을 따라 여린 소리들이 두텁게 칠해진다. 여기에 멤버들이 가성으로 부른 코러스까지 켜켜이 쌓인다. 섬세한 동시에 단단하다. 바흐로부터 비롯한 덕에 가능한 소리 풍경이다.

레드벨벳, 《Feel My Rhythm》 음반 커버 아트

봉합하는 신스 베이스

이 고풍스러운 무드에 금속성의 비트가 얹힌다. 구간마다 다른 소스들이 튀어나와 저마다의 타격감을 구현한다. 차분한 현악과 공격적인 리듬. 둘 다 레드벨벳의 자산이지만 그걸 한 곡에 담는 일이 쉬울 수는 없다.

그 어려운 과제를 훵키한 신스 베이스가 맡는다. 스트링이 그리는 음의 동선을 따라가되, 그보다 더 빠르게 진동하면서 비트와 합을 맞춘다. 비트가 강할 땐 물러나고 약할 땐 돌출하는 식으로 균형을 맞추고 결정적인 순간엔 함께 터져 나온다. 떠다니는 스트링과 찍어누르는 비트가 덕분에 하나의 곡으로 봉합된다.

출처를 따지자면 낯선 일이다. 클래식과 일렉트로닉 사이를 블랙 뮤직의 유산이 중재한다니. 글로 쓰면 터무니없는 일이 소리로는 설득이 된다. 뭐든 섞고 보는 케이팝의 미감이 이번에도 말이 되는 조합을 찾아냈다.

첫 결론

물론 모든 게 다 좋기만 할까. 답이 없는 질문들도 있다. 소리를 이렇게까지 눌러담아야만 했을까(다른 수록곡들이 허전하게 들릴 정도로). 더 이어져도 될 구간들을 이렇게까지 끊어가며 몰아쳐야 했을까(익스텐디드 버전이 필요할 정도로). 듣는 마음이 매번 변한다.

그래도 당장은 반가움이 앞선다. 〈Ice Cream Cake〉의 쾌감에 〈Psycho〉의 우아를 더하다니. 〈행복〉의 천진과 〈Queendom〉의 긍정을 이어간다니. 서사로서의 세계관에 기대지 않고도 음악적인 계보를 구축하고 또 갱신할 수 있다니. 〈Feel My Rhythm〉의 품위는 데뷔 후 8년 간 쌓아온 맥락 위에서 특히 빛난다. 지지할 이유라면 이것으로도 충분하다.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