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이었다. 둘만 있던 카페에서 이 곡만 끝없이 반복된 날이 있었다. 조빔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쓴 곡이라고 했다. 같은 테마를 반복하는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더니 언제 끝나고 다시 시작하는지도 모르게 되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저녁이었다. 그 영원 속에 갇히고 싶었다. 그런 욕심이 생기자 모든 게 끝나리란 예감이 뒤를 따랐다.
어렸을 때는 가족과 노래방을 가는 게 무서웠다. 엄마 아빠가 신나 보일수록 더 그랬다. 주인아줌마가 아무리 보너스를 넣어줘도 언젠가는 끝나고야 말 시간이었다. 행복의 문을 내 손으로 닫아야만 했다. 바깥 공기가 더운 몸들을 식힐 것이었다. 시간이 십 분쯤 남으면 속이 울렁거렸고 나는 그럴수록 신난 척을 했다. 이제 부모님과는 노래방에 가지 않는다.
일월이다. 자취방에서 같은 노래를 계속 들어봤다. 아무리 들어도 그날과 같아지지 않았다. 같은 것이 다르게 반복된다. 13년의 여름과 15년의 가을도 그런 식으로만 어설프게 겹쳐진다. 앎이 쌓이지 않아 점을 칠 수 없다. Jobim을 조빔이 아니라 조빙으로 발음한다는 것도 최근에야 알았다. 십 년도 더 좋아해 온 사람인데. 노래 제목인 ‘내 친구 하다메스’는 조빙보다 먼저 죽은 음악가라고 했다. 역시 몰랐다. 그날 카페에서 들은 노래가 정말 이 노래이긴 했을까. 그것마저 모르게 되었다. 모든 풍경이 모르는 채로 시작되고 사라진다.
어젠 길이 얼어 자꾸 미끄러졌다. 언덕이 기울 때 나는 아무것도 녹이지 못했다.
Antônio Carlos Jobim, 〈Meu amigo Radamés〉, 《Antônio Brasileiro》,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