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얻는 대신 버리기만 했던 해였다. 사랑과 혁명처럼 거창한 어휘는 가진 적도 없는데도 그랬다. 몇 년 치의 마음들을 여태 버리는 중이다.

지난해엔 이렇게 썼다.

시시한 인간에 불과한 나의 말과 행동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 없음을 알 때, 일단 뭐든 읽고 쓰면서 살아도 되겠다는 자신감을 갖춘다면 더 그럴듯하게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 절망적인 삶 앞에서, 거리로 내몰려 핍박받고 조롱당하는 사람들은 언제 어떻게 다른 세계에서 살게 될까. 역시 그건 아무도 모른다. 그렇지만 정답이 없다는 걸 알아서 뭐든 해볼 수 있다. 집회도 해보고 예술도 해보고 이론도 해보고 이것저것 해봐도 틀렸다고 혼낼 사람이 없다. (…) 지치지만 않는다면, 언젠가 우리는 지금과는 다른 세계를 살게 될 것이다. 허망한 기대다. 그러나 혁명을 못 보고 죽게 되더라도 혁명의 꿈을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이 사실만은 허망하지 않다.

늙지 않을 빛을 곁에 두기: 대학과 실천과 꿈에 대한 단상

학부생의 소명은 활자를 낭비하는 것이어서 올해도 비슷한 것들을 여럿 썼다. 신화를 배워 세월호에 관한 잡문을 쓰기도 했고 몇몇 철학자의 이름을 더 입에 담기도 했다. 하지만 철학도 정치도 변변히 쓰지 못했다. 주로 음악에 관해서만 썼다. 어떻게든 삶을 정돈된 글에 붙박고 싶었는데 도무지 안 되었다. 결론으로 달려갈 때마다 뻥을 치는 기분이 들었다. 버리지 않으려던 것을 버리겠단 생각에서 여태 못 벗어난 탓이다.

무용한 것을 두고 무용하다고 폭로하는 글은 쓰고 싶지 않다. 실패를 예감한 채로도 이어지고 마는 것이 삶이라면 이것저것을 내다 버린 후의 연장들을 다시 주워 모아야 한다. 당장은 눈이 밝은 고물상의 일상을 바란다. 그의 덕목은 무의미에 지치지 않는 태도다. 버려진 것들을 주워 모아 다시 버리는 순환에도 서정이 회전하지 않는 고요다. 일이 끝나 집에 돌아오면 몸을 뉘고 눈을 붙여 다음날을 기약하는 무감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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