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고향이었다. 부산의 부모님은 여덟 시 뉴스보다 먼저 하루를 마치셨다. 스마트폰 불빛으로 그들을 방해하다 잠을 청했다. 반듯한 사각형 천장을 보며 그간의 거짓말을 떠올렸다. 서울의 내 방들은 사각인 적 없었다. 도형의 귀퉁이는 화장실과 싱크대와 신발장을 이유로 뜯긴 채였다. 창문에선 밤새 빛과 소리와 냄새가 쏟아졌다. 새벽의 남색 사각형은 그렇게 무너졌다. 외로움은 헝클어진 모서리, 찌그러진 N개의 각을 타고 흘러들었다.
필사하던 작가의 신간을 읽었다. 결백을 향한 헌신이 여전히 숭고했다. 베끼고 베꼈지만 삶만은 베낄 수 없었다. 삶은 구두점과 조사를 뺀 문장처럼 유려해지지 않았다. 가끔은 모두가 나를 속이고 버렸다고 믿었고 가끔은 그것조차 오만임을 깨달았다. “삶은 누구에게도 특별히 호의적이지 않다, 그 사실을 알면서 걸을 때 내리는 진눈깨비.” 세계를 멋대로 쓰고 오만을 깨닫고 다시 멋대로 쓴다. 이인칭의 당신이 없어서, 취향을 붙박을 점 하나가 없어서 세계를 자꾸 지운다. 괜찮다는 말을 붙여 가면서. “왜냐하면, 당신은 언젠가 반드시 나를 버릴 테니까. 내가 가장 약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 돌이킬 수 없이 서늘하게 등을 돌릴 테니까.”
떠나는 이의 뒷모습을 종종 지켜본다. 그런 허전함을 알아서 떠날 때는 종종 돌아선다. 대문에 기대 뒷모습을 보던 엄마의 눈을 보았다. 버릇의 연원을 알게 되자 허전함은 둘의 것이 되었다.
어둑한 가로등 아래 꽃다발을 안고 좁은 길을 오르는 사내를 본 날이 있었다. 사랑이 걸어갔다. 그와 그의 사랑과 당신이 숨 쉬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믿었다. 거짓말이었다. 순간의 진실을 그러모아 삶의 진실을 말할 수는 없다. 아무리 노려봐도 보름달은 둥글고 나는 다시 당신을 미워한다. 거짓말이다.
한강, 『흰』, 난다, 2016.
정미조, 〈미워하지 않아요〉, 《37 Years》, Universal,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