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와 테이의 <Apple>을 들었다. 지난여름의 일이다. 몇 년 동안 나온 토와 테이 음반들은 만듦새만큼 듣는 게 재밌지 않았는데 이번 게 좋아서 쭉 다시 들어보니 이전 곡들도 괜찮다. 이 노래가 유독 잘 빠져선지 피쳐링이 시이나 링고라선지 알 수는 없지만, 아니 사실은 알 것도 같지만 아무튼. 이것저것 다 좋아하게 되었다. 통통대는 소리들이 더는 심심하게 들리지 않았다. 마음이 이렇게나 간단하게 변한다.
다른 것들도 금방 변한다. 이 억울한 세계는 잘 무너지지 않았지만 모양만큼은 많이도 변했다. 번화가의 건물들이 하루가 다르게 간판을 고쳐 달듯이. 인적이 드문 곳에서도 변화는 먼지처럼 쌓였다. 얇고 넓게 낡아갔다. 내 어린 시절의 동네 문방구들이 모두 문을 닫았다는 걸 보고 알게 된 사실이다. 오락하는 꼬마들이 기계를 고장 내거나 불량식품을 훔쳐먹는지 감시하던 깡마른 마녀 아줌마도 사라져버렸다. 동네를 떠난 적 없는 어머니는 그녀가 몇 년 전부터 사별한 남편의 과일 장사를 이어서 한다고 했다. 요즘 사람들이 동네 문방구를 찾진 않아도 과일만은 여전히 사 먹으니 합리적인 결정이라 하겠다. 하지만 시간이 좀 더 지나 가끔은 마트 대신 과일 가게를 들르기도 하는 늙은 세대가 멸종한다면 그것조차 틀린 결정이 되어버릴 것이다. 어쩌면 누구에겐 문방구와 오락기와 과일 장수가 유년의 추억인 세대조차 낯설 것이다. 그는 나보다 더 늙거나 더 어릴 것이다. 다 그런 것이다.
그렇게 문방구도 사라지고 과일 장수도 몇몇 떠나간 오래된 건물엔 다른 가게가 자리하지 않았다. 재개발을 기다리는 건물은 이빨 빠진 유년의 얼굴을 하고 천천히 늙어갔다. 다 그런 것이다. 슬플 것도 아쉬울 것도 없지만 슬프고 아쉽고 그러나 그럴 것 없다는 것도 아는 그런 것이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하던 유지태도 변하고 그걸 보던 우리 사랑도 변하고 사랑하던 우리도 변하고 그런 것이다. 그중 가장 지독하게 변한 건 아마도 나다. 과거로 돌아가 그때의 비참들을 다시 겪을 자신이 없으므로 억울할 수도 없다.
인상도 마음도 세계의 모양도 사랑도 나도 변한다. 영원할 수 없는 것들을 순간순간 사랑하는 것으로 그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색이 아닌 감각으로 하루하루를 밀어갈 수 있다면. 그런 믿음을 토와 테이의 노래들이 건넨다. <GBI>, <Chatr>, <Latte & Macaron>에서 언어는 의미가 아니라 모양 또는 소리였고 세기말을 주제로 삼은 《Last Century Modern》에서도 종말은 다만 감각으로만 존재했다. 이번엔 사과 하나의 모양에 관한 노래다. 변하는 것들을 사랑하는 디제이의 변하지 않는 낙관이 내게는 여전히 어색하다. 세계는 이대로 충분하다는 말을 믿지 못하는 내게 이 노래들은 어디까지나 찰나의 것들이다. 그렇지만 반박할 도리도 없다. 변하는 세계 속에서 영원히 지킬 것들의 목록을 써내려 가지 못했다. 그리하여 고난도 증오도 없는 이 즉자적인 행복 앞에 패배하고 만다. 그가 보여주는 찰나로서의 행복을 영원, 어쩌면 찰나로서의 영원으로 이길 수 있을까. 복수할 수 있을지 이대로 완전한 패배인지조차 알 수 없어 다시 한 번 지고 만다.
Towa Tei, <Apple>, 《Lucky》,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