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지 않을 무구함으로: Noel Rosa, 〈Onde Está a Honestidade?〉

낡은 사진으로 그를 만난다. 음원 플랫폼에 쌓인 컴필레이션 음반 속 흐린 초상으로. 

말끔히 빗어 넘긴 머리, 말간 얼굴에 또렷한 코. 다만 태어날 때의 사고로 비뚤어진 턱. 카메라 너머 공허를 응시하는 듯한 시선. 요컨대 신사적이지만 어딘가 낯선 경계인.

그런 생애였다. 그는 모자람 없는 집에서 태어났으나 술과 음악의 편이었다. 카니발을 뒤흔든 작곡가였으나 빈민가의 음악가와 어울렸다. 결핵을 앓고도 담배를 달고 살았고, 스물여섯에 생을 마쳤다. 20세기가 그리던 천재의 전형이었다.

1930년대, 그는 갓 태어난 삼바의 전형을 다시 썼다. 그에게 삼바는 카니발인 동시에 팝이었다. 둘째 박자에 강세를 싣는 리듬은 지키되 그 위에 유려한 화성을 덧댔다. 그러고도 여전히 브라질이었다. 얼핏 초기 재즈의 랙타임*처럼 들리지만 그보다는 쇼루**의 문법을 빌렸다. 덕분에 그의 삼바는 브라질을 이으면서도 라디오 시대를 설득할 정교함을 지녔다. 

* Ragtime: 1890년대 말 미국에서 시작된 피아노 중심의 음악 장르. 초기 재즈의 전신이 되었다.
** Choro: 1870년대 말 브라질에서 시작된 음악 장르. 유럽의 무도회 음악과 브라질 리듬이 결합되었다.

Chico Buarque가 다시 부른 〈Filosofia〉

가사로도 빛났다. 비판적이되 쉽고 유머러스했다. 가난을 그릴 땐 좌절하는 대신 ‘파티에 뭘 입고 갈까?’ 물었다(Com Que Roupa?). 상류층을 놀릴 땐 ‘부자인 척을 해야겠다’며 능청을 떨었다(Filosofia). 그에겐 멀끔한 얼굴로 저잣거리의 어휘를 읊는 재주가 있었다. 

Gilberto Gil가 다시 부른 〈Com Que Roupa?〉

〈Onde Está a Honestidade?〉는 천진한 말씨를 밀어붙인다. 그는 부패한 당신이 부자인 이유를 궁금해한다. 실은 다 알면서. 마치 이런 부조리는 처음 본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리고 묻는다. ‘정직은 어디에 있는가?’ 그는 알고 있었다. 무도한 이를 수치스럽게 하는 건 무구한 얼굴임을. 

이 무구함은 자라 무엇이 될까. 그는 너무 일찍 떠났고 우리는 영영 답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유산만은 남았다. Jobim을 경유하면 보사 노바의 긍정성이 되었고, Chico Buarque에 이르면 문화 운동의 용기가 되었다. 그는 영원한 무구함으로 모두의 영감이 되었다. 

고향 Vila Isabel에 놓인 Noel Rosa의 동상.

생에 지쳐 무감해진 마음 한편에 낡지 않을 무구함을 쌓아둘 수 있다면. 그런 꿈으로 가사를 옮겼다. 

Beth Carvalho는 Noel Rosa를 진한 파고지로 부른다.
Ivan Lins는 이 노래를 00년대의 댄스 팝으로 옮겼다.
Teresa Cristina는 목소리와 7현 기타만으로 곡을 메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