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미뤄온 글을 이제야 쓴다. 하필 윤종신의 새 노래 제목이 내 필명과 같다는 사소한 이유와 하필 그게 아주 근사하다는 각별한 이유로. 오래 들어온 노래들, 좋은 노래라는 판단에 앞서 도리 없이 좋아하고 마는 노래들을 두고 쓴 글이다. 그러니 비평이 아니라 내 이야기일 수밖에. 내 삶의 궤적에 얹혀있어 차마 버릴 수 없는 노래들, 그 노래들과 떨어질 수 없는 영원한 과거들을 쓴다.
10.
처음 들은 음반은 10집이었다. 순전히 〈오늘의 날씨〉 때문이었다. 내 첫 편애의 대상인 클래지콰이가 편곡에 참여했던 곡이다. 비슷한 계보로 엮을 수 있는 에스피오네가 편곡한 〈Lunch Menu〉도 즐겁게 들었다. 그때 나는 중학생이었으니 〈몬스터〉의 지독한 이별은 내 진실일 수 없었다. 받아들일 수 있던 건 연애하는 사람이 발산하는 맑은 기운, 이를테면 〈환생〉과 〈고백을 앞두고〉 즈음의 정서였다. 발라드를 좋아하지 않았다. 어린 내게 21세기의 음악은 그러지 않아야 했다. 새로운 소리들을 좋아해야만 시대의 음악을 제대로 좋아할 수 있다고 믿었다. 뭐가 좋은지도 모른 채 공부하듯 크라프트베르크 따위의 음반을 돌려 들었다. 운 좋게 음반 단위로 음악을 대하는 습관을 붙인 덕에 10집의 다른 노래들도 들었는데 그게 지금의 내 취향을 정초했다. 외할머니 집 TV에 연결된 노래방 기계로 〈오늘의 날씨〉를 불렀던 날을 기억한다. 그날 오후의 채도, 이불에서 배어 나온 노인의 냄새, 이따금 전기가 통해 쥐는 게 겁났던 마이크의 저릿함까지. 취향은 그런 감각들을 겹쳐가며 세워졌다.
11.
불법으로 다운받아 듣던 10집을 사게 된 건 고등학교 때 만난 친구 때문이었다. 윤종신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가 선물 받았다는 9집이, 들어본 적 없는 그 음반이 부러워서 대신 10집을 샀다. 10집의 다른 노래들, 특히 〈휴일〉의 기분을 사랑하게 된 것도 그때였던 것 같다. 11집이 나오던 때이기도 했다. 친구가 먼저 산 11집을 CD 플레이어와 함께 빌려 수학 문제를 풀며 들었다. 사랑이나 이별처럼 강렬한 사건에서 유독 뒤로 물러난 듯한 11집의 태도는 내 처지와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지독한 시간이 꽤 지난 뒤에 〈동네 한 바퀴〉를 돌거나 〈야경〉을 바라보는 사람의 차분한 슬픔이 좋았다. 사랑도 이별도 겪은 적 없어서 이별 전날 이별 이후를 걱정하는 〈내일 할 일〉은 차라리 어색했다. 그 중에서도〈무감각〉을 가장 사랑했다. 잘 포개어 눌러둔 마음이 끝내 폭풍처럼 밀려오는 밤, 그래도 곧이어 나를 재워주는 밤이 꼭 매일의 내 밤 같았다. 그렇게 사랑의 경험도 없이 사랑의 노래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갔다.
12.
음악을 조금 덜 들었다면 달랐을까. 재수를 했다. 월간 윤종신이란 기획도 그 해에 생겼다. 한 달에 한 번 나오는 노래들이 비슷한 모양을 한 일년의 분기점들이었다. 10월 말에는 그동안의 노래들에 세 곡을 추가한 12집이 나왔다. 끝에 실린 〈12月〉이란 노래가 미웠다. 성탄의 기운을 담은 신디사이저와 먹먹한 드럼 프로그래밍, 끝의 폭죽처럼 펑펑 터져 나오는 순수한 행복이 부러워서 많이 울었다. 무사히 대학에 들어왔는데도 이 노래는 종종 나를 괴롭혔다. 나만 사랑하는 사람과 이어폰을 나눠 끼고 이 노래를 들은 광화문의 밤, 훈련소에서 펑펑 내리는 눈을 연신 쓸어내다 이 노래가 떠오른 아침에 그랬다. 그때 함께 〈12月〉을 듣던 사람은 애인이 되었고 군 생활도 끝이 났지만 저런 행복이 종일 내 것인 건 아니어서 부럽다는 말을 그치지 못한다.
~9.
새 음악을 언제나 찾는다. 스트리밍 사이트와 해외 웹진과 블로그를 뒤져 신곡을 찾는다. 그런 중에도 가끔은 윤종신의 옛 음반들을 찾아 듣는다. 사당의 둘레길을 산책하다 MP3 플레이어에 넣어두기만 했던 9집을 처음 들은 날을 잊지 못한다. 〈수목원에서〉, 〈9月〉, 〈보고 싶어서〉로 슬픔이 깊어지는 경험을 하다가 첫 곡으로 되돌아오면 나는 정자에 걸터앉아 〈그늘〉을 흥얼거렸다. 그렇게 산책을 끝내고 들른 헌책방에서 4집과 5집의 중고를 발견했던 행운이나, 같이 가기로 한 사람이 못 가게 되었다며 친구가 ‘사랑의 역사: 그늘’ 공연을 보여줬을 때의 행운으로 삶은 유지되었다. 행운이 추동하는 삶은 위태롭지만 행운의 기억을 붙들 계기들이 있다면 삶은 좀 더 길게 이어진다. 예컨대 노래방에서 윤종신의 노래를 부르는 일이 있어서 여기까지 지내왔다.
고요.
올해 월간 윤종신에선 1월의 〈The Detail〉과 6월의 〈왠지 그럼 안될 것 같아〉를 좋아한다. 한편 몇 번 듣고 마는 곡도 생겼다. 워낙 많은 곡을 쓰는 사람이어서 그렇다. 어떻게 이렇게 많이 쓸 수 있는 걸까. 연애와 이별이란 뻔한 주제를 무수히 변주하는 수밖에 없는데. 내 사랑만은 유일하다는 믿음이 무너지는 경험을 해보았다면 안다. 내 연애 역시 몇 가지 연애 패턴에 넣어진단 사실을 모를 수가 없다. 그러니 그저 솔직하게 풀어내는 것만으론 그 많은 곡을 쓸 수가 없다. 그럴 때 김동률은 〈기필코〉 같은 노래에서 가사가 안 써진다는 가사를 쓰고 유희열은 여행, 크리스마스카드 같은 소재를 끌어들이고 윤상의 가사를 쓰는 박창학은 아예 연애를 넘어 삶 자체를 두고 쓴다. 윤종신에게서 자주 보이는 기법은 한 시점만 잡는 묘사다. 고백 직전, 이별 전날, 이별하는 날, 이별 직후, 이별하고 2년 뒤의 순간을 그리는 식이다. 바로 그 순간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것을 그리고 그때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것을 설명한다. 〈고요〉는 이별하는 찰나를 그린다. 포스티노, 이근호, 박인영의 이름이 무색하지 않은 우아함으로. 채 5분이 안 되는 노래보다 짧은 순간을 묘사하므로 뮤직 비디오는 아주 천천히 흐른다. 애인에서 애인이 아니게 되는 단절의 순간, 잊을 수 없는 시간을 영원으로 남기기 위해 촬영을 시작한다. 정작 헤어지는 순간은 볼 자신이 없어서 카메라마저 기둥으로 연인의 헤어짐을 가리면서. 꿈을 떠올리면 소리는 사라지고 화면만 남듯, 추억에는 대개 소리 대신 화면이 남는다. 고요 속에 이별하자는 말은, 그래서 한참이 지나도 소리 없이 이 순간을 기억하리란 예감으로 들렸다. 어쩌면 가사 속 현재형은 한참 후에야 그 순간을 재현하며 쓴 것일지도 모른단 상상을 한다. 헬리캠으로 잡은 3인칭의 시점 역시 어쩌면 먼 훗날의 자신이 상상하는 풍경일지도 모른다. 그런 상상을 가능케 하는 묘사들이 이 노래 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