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의 배후는 Bahia: Dorival Caymmi의 노래들

길지 않은 브라질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Rio와 São Pualo만으로도 벅찼으나 Bahia를 포기할 순 없었다. 연모하는 노래들의 배후를 눈에 담고 싶었다. 그 연원을 미리 좇으려다 한 이름 앞에 멈춰섰다. Dorival Caymmi. 그의 사상을 미리 품어보려 했다.

Dorival Caymmi가 작곡한 〈Doralice〉. João Gilberto와 Stan Getz의 버전 덕에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유럽이 처음 발견한 브라질은 Bahia였다. 16세기 포르투갈의 함선이 처음 닿은 땅, 식민지의 첫 수도, 설탕 무역을 위해 흑인 노예를 들여오던 항구. 선주민이 머물던 자리에 옛 유럽의 양식이 심기고 더 오래된 흑인의 유산이 배어들었다. 브라질의 시작이었다.

그러니 이상할 게 없다. 보사 노바의 선구자 João Gilberto가 Bahia 출신인 것도. Tropicália와 MPB를 세운 Gilberto Gil, Caetano Veloso, Gal Costa, Maria Bethania가 여기서 태어난 것도. 그리고 그 모든 이들에 앞서 Dorival Caymmi가 있었던 것도.

1914년, Dorival Caymmi는 백인과 혼혈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족은 클래식 애호가인 동시에 아프리카계 종교 Candomblé의 신자였다. 덕분에 그는 백인이면서도 흑인을 이해했고 음악 교육 없이도 노래를 지었다. 22살에 이미 카니발 우승 곡을 작곡했고, 기자로 일하던 중에 쓴 노래는 Carmen Miranda의 대표곡이 됐다. 남긴 곡은 적었지만 남긴 영향은 컸다. 50년대의 보사 노바도, 60년대의 MPB도 그의 레퍼토리에 빚을 졌다. 그는 20세기 브라질 음악의 든든한 뒷배였다.

1930년대 브라질 음악을 미국에 알린 Carmen Miranda가 부른 Dorival Caymmi의 곡 〈O Que É Que A Baiana Tem〉

악곡은 서정적이되 간결했다. 아프로-브라질 종교와 Ijexá 음악의 전통을 따라, 적은 주제 선율을 반복하는 소곡들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정갈함이 곧 단순함을 뜻하진 않았다. 그는 멜로디와 노랫말을 한 땀 한 땀 오래 세공했고, 당대 재즈의 영향으로 7화음, 9화음을 끌어들였다. 짧은 멜로디로도 빛나는 화성적 드라마를 썼다.

João Gilberto가 연주한 Dorival Caymmi의 〈Samba da Minha Terra〉

연주도 노래를 닮았다. 관현악을 들이기도 했지만 기타 한 대로 전체를 지탱하는 때도 많았다. 나일론 기타를 뜯는 일이 화성과 리듬을 겸한다는 점에선 보사 노바의 주법을 선취했다. 그는 연주와 연주 사이 어색한 침묵을 구태여 메우는 대신 비워두곤 했다. 공백이 짓는 아련함, 최소한의 요소로 추상한 브라질. Bahia 풍의 사우다지*였다.

* 사우다지(Saudade): 흔히 ‘그리움’으로 번역되는 브라질 고유의 정서. 다시 가질 수 없는 대상을 향한 그리움이란 점에서 쓸쓸함, 애틋함을 동반한다.

79년의 Gilberto Gil는 Dorival Caymmi의 〈Marina〉에 당대 훵크의 그루브를 덧입혔다.

가창은 얼핏 기름진 재즈 보컬 같았지만 달랐다. 그에겐 감정의 파고가 있었다. 당대의 남성 보컬들이 시종일관 여유 있는 체하며 마초적 남성성을 좇을 때, 그는 기분의 습격을 외면하지 않았다. 고향 Bahia의 아름다움을 실컷 예찬하고 깊이 그리워했다. 순간의 정념에 솔직했기에 그가 묘사한 일상에도 건강한 낙관이 깃들었다.

그의 노랫말은 Bahia의 자연이거나 자연을 그리워한다. 진한 향수는 일상을 긍정하는 쪽으로 나아간다. 그런 노래 둘을 골랐다.

Dorival Caymmi의 자녀들과 Jobim이 연주하는 〈Maracangalha〉. Paula Morelenbaum 등 당대의 대단한 음악인들이 작은 방에 모여 근사한 앙상블을 전한다.

〈Maracangalha〉는 하나의 다짐으로 가득하다. ‘난 Maracangalha로 갈 거야.’ Bahia 북쪽 끝의 해변 마을을 향해, 흰 유니폼과 밀짚모자를 쓰고, 함께 갈 이가 없다면 혼자서라도. 경쾌한 말씨여서 얼핏 장난처럼 들리지만 노래가 끝나면 이상한 확신이 든다. 이 고집은 틀림없이 진심이라는 것. 이 남자는 정말로 떠나고 말 거란 것.

브라질의 근사함을 미국으로 전하던 Sergio Mendes의 밴드가 Dorival Caymmi와 함께 연주한 〈Milagre〉.

‘기적’이란 뜻의 〈Milagre〉는 세 어부의 이야기를 그린다. 고기를 못 먹는 성 주간의 수요일, 세 사람은 궂은 날씨를 알면서도 바다로 나선다. 의례와 생존을 위해서. 밀려드는 파도 앞에서 셋은 저마다의 태도로 일상을 지킨다. 버티거나, 일하거나, 침묵하거나. 역경이 끝나면 알게 된다. 셋 중 누구도 틀리지 않았음을. 우리에겐 인내와 헌신과 성찰이 모두 필요함을.

Copacabana 해변에 놓인 Dorival Caymmi 동상

그는 줄곧 바다를 노래했지만 2025년의 내겐 도시의 일로도 들렸다. 두 노래가 불의한 도시에 맞서는 마음 같았다. 도시의 반대편으로 달려가는 마음이었고, 도시의 역경을 이겨내는 세 갈래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 모두를 떠받치는 든든한 배후로서의 Bahia가 있었다. 그런 기댈 곳을 나누고 싶었다.

Maracangalha

Eu vou só
Eu vou só
Eu vou só
Eu vou só
난 혼자 갈 거야*
난 혼자 갈 거야
난 혼자 갈 거야

* Eu só vou로 쓰면 ‘난 그냥 갈 거야’라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só(오직, 그저)의 중의적인 의미를 모두 담은 가사로 읽힌다.

Eu vou pra Maracangalha, eu vou
Eu vou de liforme branco, eu vou
Eu vou de chapéu de palha, eu vou
Eu vou convidar Anália, eu vou
난 Maracangalha에 갈 거야, 갈 거야
난 흰 유니폼을 입고 갈 거야, 갈 거야
난 밀짚모자를 쓰고 갈 거야, 갈 거야
난 Anália에게 같이 가자고 할 거야, 할 거야

Se Anália não quiser ir eu vou só
Eu vou só
Eu vou só
Se Anália não quiser ir eu vou só
Eu vou só
Eu vou só sem Anália, mas eu vou
Anália가 가고 싶지 않다면 난 혼자 갈 거야
난 혼자 갈 거야
난 혼자 갈 거야
Anália가 가고 싶지 않다면 난 혼자 갈 거야
난 혼자 갈 거야
난 Anália 없이 혼자 갈 거야, 아무튼 갈 거야

Milagre

Maurino, Dadá e Zeca, ô
Embarcaram de manhã
Era quarta-feira santa
Dia de pescar e de pescador
Quarta-feira santa, dia de pescador
Maurino, Dadá와 Zeca는, 오
아침에 배에 올랐어
그날은 성수요일*이었지
낚시와 어부의 날

* 부활절 전 고난 주간의 수요일

Se sabe que muda o tempo
Sabe que o tempo vira
Ah, o tempo virou
날씨가 바뀐다는 건 알지
날씨가 돌변한다는 건 알지
아, 날씨가 돌변했어

Maurino que é de guentar, guentou
Dadá que é de labutar, labutou
Zeca, esse nem falou
잘 참는 Maurino는 참았어
열심히 일하는 Dadá는 일했어
Zeca는 말도 안 했어

Era só jogar a rede e puxar a rede
Era só jogar a rede e puxar a rede
Era só jogar a rede e puxar
그저 그물을 던지고 그물을 당기는 일이었지
그저 그물을 던지고 그물을 당기는 일이었지
그저 그물을 던지고 당기는 일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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