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니발의 이념: 행진하는 Gal Costa의 경우

2월의 끝 혹은 3월의 초입. 한국이 늦겨울을 앓을 때 브라질은 일주일을 카니발로 산다. 일상이 멈추고 낮과 밤이 바뀌는 소요의 시간. 근사한 노래를 끝도 없이 낳고 기르는 오래된 의례. 그 비밀을 멀리서나마 구하고 싶었다.

Heitor dos Prazeres, Festa de São João

카니발의 이념

카니발이라니. 이토록 화려한 환상이라니. 오래 궁금했다. 브라질은 어쩌다 이리 근사한 의례를 갖게 된 걸까.

씨앗을 심은 건 포르투갈의 침략자들이었다. 당시의 이름은 Entrudo*. 부활절로부터 7주쯤 전, 사순 시기를 앞둔 가톨릭교도들의 파티였다. 처음엔 밀가루와 진흙 따위를 던지는 짓궂은 장난이었고, 19세기엔 유럽식 퍼레이드를 들여오며 축제의 꼴을 갖춰갔다.

* Entrudo: 포르투갈과 브라질에서 19세기까지 이어진 지역 축제. 가면무도회 등 브라질 카니발의 특징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카니발의 말뜻을 세운 건 가난한 이들이었다. 플랜테이션이 쇠퇴하자 도시로 밀려든 19세기의 흑인 노예들이었다. 이들은 비싸고 지루한 축제 대신 거리에서 춤을 췄다. 유럽의 놀이에 아프리칸 리듬이 섞여 들었다. 낮은 곳에서 말미암은 새 축제였다.

Carybé, Iconografia dos Deuses Africanos no Candomble da Bahia에 수록된 일러스트

민중의 축제는 자주 정치적이었고 으레 탄압 받았다. 그러나 어떤 분출은 차마 막을 수 없는 것. 국가는 카니발을 금지하는 대신 이용하는 쪽을 택했다. 부글거리는 급진에서 국민 통합의 도구로. 카니발은 그런 양극단의 스펙트럼으로 불어났다.

우리는 카니발이 ‘자유’로, 또한 비극, 노동, 강제, 원죄, 의무가 부재하는 환상적이고 유토피아적 순간을 살 수 있는 가능성으로 정의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 카니발은 모든 것을 정반대로 할 수 있는 기회로, 그 안에서 사람들은 과잉의 세상을 살고 경험한다. (…) 카니발은 모든 과잉을 체계적으로 실천하는 규칙이 존재하는 사회적 우주를 제안하는 것이다!

호베르뚜 다마따 (2015). 브라질 사람들. (임두빈, 역). 후마니타스. (원본 출판 1974년)

가난한 이들의 행복은
카니발의 거대한 환상을 닮았지
우리는 일 년 내내 일해
꿈의 순간을 위해
왕이나 해적이나 정원사의
복장으로 변장하기 위해
수요일이면 끝날 모든 것을 위해

Jobim, A. C. (1958). A Felicidade [Song]. Orfeu Negro.

여기 카니발의 기쁨과 슬픔이 있다. 하나, 브라질은 현실에 없는 유토피아를 길게, 진짜처럼 살아낸다. 둘, 그런 환상이 무력한 삶을 버티는 도구로 기능한다. 대단한 연극이되 한낱 연극에 그치는 것. 그런 일에 삶을 거는 이들에겐 무엇이 남을까.

사랑하는 노래들로부터 답을 찾고 싶었다. Gal Costa의 행진곡을 다시 들었다.

행진하는 Gal Costa

한국에서 Gal Costa는 늘 60년대였다. Veloso와 함께 했던 보사 노바, Tropicália 동지들과 함께 함께한 아방가르드로만 기억됐다.

그러나 그는 그 후로도 오래, 다른 모양의 노래들을 불렀다. 70년대가 되자 프로듀서는 그에게 팝을 요구했다. 그는 브라질의 과거로 답했다. 영미권의 첨단을 좇는 대신 오래된 브라질을 현대화하는 길을 걸었다. 무대 위를 카니발로 만드는 그의 해사한 웃음을 나는 오래 좋아해 왔다.

Gal Costa, 〈De Onde Vem O Baião(Baião은 어디에서 오는가)〉, 1978.

79년 그가 부른 행진곡은 Balancê였다. 초기 삼바를 미국에 알렸던 Carmen Miranda의 1936년 노래였다. 경쾌하게 상승하는 멜로디에 훵크 한 스푼을 더해 큰 인기를 얻었다. Balancê는 ‘삼바를 추는 몸짓’을 뜻하고, 가사는 제목처럼 그저 춤의 고양감을 찬미한다. 당신과 원 안에서 춤추고 싶다고. 그 덕에 나는 자랐고 슬펐고 또 늙어간다고.

Gal Costa, 〈Balancê〉, 1979. 브라질의 방송사 TV Globo의 공연 영상.

그러나 81년의 한 공연 이후 노래는 다른 의미로 불어났다. 공연의 이름은 Show 1º de Maio. 브라질 민주주의 센터에서 노동절을 기념하는 4월 30일의 전야제였다. 걸출한 음악가들이 독재의 우울을 걷어내려 애쓴 밤이었다. 덕분에 카니발은 해방의 꿈과 또 한 번 더부살이를 했다.

독재 정권의 대응은 참담했다. 군부는 폭탄 테러를 꾀했다. 관중들을 공격한 뒤 그 책임을 뒤집어씌울 셈이었다. 다행히 테러는 실패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폭탄은 육군 상사의 무릎 위에서 터졌다. 근사한 밤에 실패한 폭력이 얼룩졌다.

Gal Costa, 〈Balancê〉, 1981. Show 1º de Maio에서의 라이브 실황.

같은 해 11월, Gal Costa는 새 행진곡을 냈다. Festa do Interior, ‘시골 축제’라는 제목 아래 전쟁과 테러의 비유를 품은 노래였다. 얼핏 보면 그저 Festa Junina*를 다룬 노래였지만 가사엔 전쟁, 폭탄 따위의 단어가 새겨졌다. 상승하고 하강하는 Frevo**의 쾌감 위로 날선 비유가 서렸다.

* Festa Junina: 매년 6월 세례자 성 요한의 축일을 기념하는 축제. 특히 브라질 북동부를 중심으로 발전했으며, 카니발보다는 전통적이고 목가적인 분위기를 띤다.
** Frevo: 브라질 북동부의 음악 장르. 삼바보다 빠른 템포의 행진곡으로 퍼레이드에 특히 많이 쓰인다.

눈앞 현실이 전쟁 같을 때, 작사가 Abel Silva는 전쟁의 메타포로 사랑의 시를 썼다. 아무도 죽지 않는 마법의 폭탄이 있다면, 기쁨의 참호에서 사랑이 터져 나온다면. 그렇게 노래는 환희로서 세계의 역전을 소망했다. 카니발의 이념대로였다.

Gal Costa, 〈Festa do Interior〉.

Gal Costa를 통해 환상이 현실을 두드리는 두 갈래를 읽는다. 현장의 일부가 되거나, 현장의 조각을 품거나. 싸우는 사람들의 편에 서거나, 아픈 현실을 시로 새기거나.

이토록 거창한 이념도 한국의 광장을 생각하면 낯설지가 않다. 걷고 노래하며 아직 없는 세계를 소원하는 일이니까. 광장이 해방인 동시에 재난 같은 때, 낮은 곳에서 비롯한 환희와 사랑이 실마리가 될 수 있을까. 그런 기대로 노랫말을 옮겼다.

Gal Costa, Montreaux Jazz Festival, 1980

Balancê

Ó balancê, balancê
Quero dançar com você
Entra na roda, morena, pra ver
Ó balancê, balancê
오, 발란세*, 발란세
당신과 춤추고 싶어
원으로 들어와, 갈색 (머리) 아가씨, 보러 와
오, 발란세, 발란세

* 발란세: 삼바를 추며 흔들리는 몸짓을 가리키는 표현. 춤, 리듬, 스윙, 그루브 등의 번역어를 고민했으나 삼바의 맥락을 온전히 가리키기 위해 원어 그대로 옮겼다.

Quando por mim você passa
Fingindo que não me vê
Meu coração quase se despedaça
No balancê, balancê
당신이 날 지나쳐갈 때
날 못 본 체하며
내 마음은 거의 찢어질 듯해
발란세, 발란세 안에서

Você foi minha cartilha
Você foi meu ABC
E por isso eu sou a maior maravilha
No balancê, balancê
당신은 나의 입문서였어
당신은 나의 ABC였어
그리고 그 덕에 나는 경이로운 사람이 됐어
발란세, 발란세 안에서

Eu levo a vida pensando
Pensando só em você
E o tempo passa e eu vou me acabando
No balancê, balancê
나는 삶을 보내
오직 당신만을 생각하며, 생각하며
그리고 시간은 지나고 나는 쇠약해지고 있어
발란세, 발란세 안에서

Festa do Interior

Fagulhas, pontas de agulhas
Brilham estrelas de São João
Babados, xotes e xaxados
Segura as pontas meu coração
불꽃들, 바늘의 끝들,
São João*의 별들이 빛나
치마 프릴**, Xote, Xaxado***
잘 버텨줘 내 마음아

* São João: Festa Junina가 기념하는 세례자 성 요한.
** 치마 프릴: Bahia 지방의 전통 의상.
*** Xote, Xaxado: 브라질 북동부의 음악 장르 Forró와 관련이 깊은 전통 춤 장르.

Bombas na guerra, magia
Ninguém matava
Ninguém morria
전쟁의 폭탄, 마법
누구도 죽이지 않았어
누구도 죽지 않았어

Nas trincheiras da alegria
O que explodia era o amor
Nas trincheiras da alegria
O que explodia era o amor
기쁨의 참호에서
폭발하던 것은 사랑이었어
기쁨의 참호에서
폭발하던 것은 사랑이었어

Ardia aquela fogueira
Que me esquentava
A vida inteira, eterna noite
Sempre a primeira
Festa do interior
타올라 화롯불이
나를 따뜻하게 해주던
평생, 영원한 밤
언제나 처음처럼
시골 축제

Festa do Interior의 가사가 Show 1º de Maio의 사연을 참조했다는 사실은 Ruy Godinho의 저서 ‘Então, foi assim?’을 인용한 Muiscaemprosa의 포스팅을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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