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니발의 실천: 학교와 깃발은 명사로 된 청유형

카니발의 이념을 헤아릴수록 궁금했다. 이 꿈 같은 일은 어쩌다 이만큼 커졌을까. 소외된 이들의 소동은 무슨 수로 지역을 먹여 살리는 산업이 되었을까. 생업을 지탱하는 건 어쩌면 오래된 제도와 관성. 그런데도 여전히 빛나는 카니발이 궁금했다. 고루한 옛일을 고상하게 만드는 손과 발을 알고 싶었다.

최초의 카니발 행진곡 Chiquinha Gonzaga의 〈Ô Abre Alas!〉.

삼바 학교(Escola de Samba)

카니발의 처음과 지금을 견주어본다. 약자들의 난장에서 국가적인 축제로. 거리의 행렬에서 스타디움의 스펙터클로. 강산이 열 번은 더 변할 동안 카니발은 브라질의 자부심으로 불어났다. 몸집이 변하면 마음도 변한다. 덕분에 카니발의 말뜻은 얼마간 퇴색하고 또 새로 칠해져 왔다.

이런 비약의 시작에 삼바 학교(Escola de Samba)가 있었다.

최초의 삼바 학교 Deixa Falar의 창립자 Ismael Silva.

1928년, 작곡가 Ismael Silva는 퍼레이드를 준비할 단체를 만들었다. 이름은 Deixa Falar(말하게 내버려둬). Ismael은 여기에 학교란 이름을 붙였다. 공인 기관도 아니었고 수업도 없었지만 그는 이 농담을 포기하지 않았다. 영감을 준 건 근처의 사범학교였다. 저들이 국가를 위한 교사를 육성한다면 우리는 삼바를 위한 교육자를 만들어내자. 그런 포부였다.

Ismael Silva, 〈Se Você Jurar〉. Noel Rosa를 다룬 영화 《Noel: Poeta da Vila》의 첫 장면.

곳곳에서 학교들이 태어났다. 삼바가 그러했듯 빈민가(Favela)를 중심으로. 눈앞의 목표는 퍼레이드였지만 공동체의 의미는 자꾸 팽창했다. 춤과 노래를 배울 땐 교육 공동체였고 억압의 역사를 되새길 땐 정치 공동체였다. 주민들이 평등하게 교류하는 지역 공동체이기까지 할 때, 삼바 학교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학교였다.

돌이켜보면 학교는 그래야 했다. 출신과 계급 따위는 못 본 체하는 곳. 가난한 부모의 자식에게도 시와 꽃을 가르치는 곳. 물려받은 차이를 표백한 덕에 도리어 저마다의 고유함이 드러나는 곳. 어색하게 피어나는 자의식을 응원하고 다른 삶의 가능성을 제안하는 곳. 세탁부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삼바 학교의 교장이 된 Ismael이 그러했듯이.

Chico Buarque, 〈Piano Na Mangueira〉. Jobim이 곡을 쓰고 Chico가 가사를 썼다. 삼바 학교 Mangueira에 대한 존경을 담았다.

여기까지가 학교의 이념이라면 다음은 현실의 차례. 배움 다음엔 생계의 기술이 필요했다. 일인 분 시민으로서의 물적 토대를 약속해야 했다. 삼바 학교의 수단은 공연이었다. 학교는 주말마다 거리에서 연습을 겸한 공연을 열었고 모금으로 비용을 충당해 왔다.

여러 학교가 모인 경연이 시작되자 판돈은 더 커졌다. 처음엔 자발적인 행사였지만 기삿거리를 찾던 스포츠 신문사가 상금을 걸면서 학교들은 더 진지해졌다. 경쟁은 과열됐고 퍼레이드는 웅장해졌다. 정부도 한몫했다. 삼바는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격상됐고 덕분에 삼바 학교는 보조금을 받는 공인 단체가 됐다. 경연은 TV를 타고 전국으로 퍼져갔다. 학교도 카니발도 더는 예전 같을 수 없었다.

〈Turma Da Funil〉. 1956년 Vocalistas Tropicais의 삼바 행진곡을 Jobim, Miúcha, Chico가 함께 불렀다.

이제 삼바 학교엔 두 얼굴이 남았다. 한쪽엔 자본과 정부 지원이 굴려 가는 기업의 얼굴이. 다른 한쪽엔 여전히 지역의 빈민을 먹여 살리는 협동조합의 얼굴이. 덕분에 삼바가 인기를 잃어갈 때도 카니발만은 살아남았다. 더 빠른 노래, 더 반짝이는 의상으로. 뜨내기의 마음을 흔드는 쪽으로.

카니발의 변천을 좇고 나니 더 궁금해졌다. 학교들은 이만치 낡고 닳았는데 어째서 여전히 뭉클한가. 답을 위해 이번에도 사랑하는 노래들에 기댔다.

색과 깃발

학교를 다룬 노래 둘을 골랐다. Portela를 찬미하는 Paulinho Da Viola의 〈Foi Um Rio Que Passou Em Minha Vida〉, Mangueira를 은유하는 Cartola의 〈Verde Que Te Quero Rosa〉.

브라질의 시각 예술가 Lygia Pape의 〈Divisor〉.

이들은 삼바 학교를 색으로 기억한다. 색은 깃발을 통해 바람에 나부낀다. 덕분에 질문이 꼬리를 문다. 첫째, 왜 하필 색인가. 둘째, 왜 하필 깃발인가.

왜 하필 색인가. 색은 마음과 이념의 일이기 때문이다. 여느 나라가 그러하듯 브라질도 색에 이런저런 상징을 붙인다. 파랑은 고요, 하양은 평화, 초록은 희망, 분홍은 사랑, …. 삼비스타에게 학교는 그런 곳일 테다. 이해타산에 눈 감고 미를 좇는 우정의 공동체. 설령 그게 절반쯤은 거짓말이라도.

왜 하필 깃발인가. 깃발은 선언하고 모으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 장 천에 뜻을 담고, 닮은 사람들을 그 아래에 세워둔다. 깃발을 찾는 일은 나의 지향을 구하는 일. 그저 개인의 총합이던 군중도 깃발 아래에선 의미 있는 공동체로 변한다. 그런 무리 안에서 개인은 개인보다 강해진다. 꿈꾸는 개인이 태어난다.

Paulinho Da Viola, 〈Foi Um Rio Que Passou Em Minha Vida〉

1970년 Paulinho Da Viola도 그런 무리의 힘을 증언한다. 그는 Portela를 푸른 강물로 그린다. 그에게 Portela는 방황 끝에 만난 행진의 황홀, 생을 흔들어 놓는 시린 물결이었다. “그건 내 인생을 흐른 강이었어. 그리고 내 인생은 휩쓸려갔지.” 그는 알았다. 학교는 구원인 동시에 다른 삶을 강제하는 명령이기도 하다는 것을.

Cartola, 〈Verde Que Te Quero Rosa〉

77년의 Cartola는 Mangueira의 상징색인 초록과 분홍을 넘어 더 많은 색을 품는다. “아이들의 미소는 하얀색”, “삶의 모든 슬픔은 검은색”. Mangueira는 그 뒤를 소망처럼 따른다. 숲의 초록, 사랑의 분홍이 생을 씻겨주기를. 이 무리가 나를 구하고 그리하여 무리 밖까지 구하기를. Mangueira의 창립자, 빈민가의 시인 Cartola는 학교를 통해 그런 유토피아의 연쇄를 꿈꿨다.

Paulinho Da Viola와 Cartola가 함께 부른 〈Acontece〉

우리는 이미 안다. 학교도 깃발도 그리 대단할 수 없음을. 그러나 또한 안다. 변변찮은 믿음으로 건네는 손길들의 기운을. 어쩌면 학교와 깃발은 명사로 된 청유형. 그런 믿음으로 노랫말을 옮겼다.


Paulinho Da Viola – Foi Um Rio Que Passou Em Minha Vida

Se um dia
Meu coração for consultado
Para saber se andou errado
Será difícil negar
언젠가
뭔가 잘못한 게 있는지
내 마음이 심문을 받는다면
부정하긴 어려울 거야

Meu coração tem mania de amor
Amor não é fácil de achar
A marca dos meus desenganos ficou, ficou
Só um amor pode apagar
A marca dos meus desenganos ficou, ficou
Só um amor pode apagar
내 마음엔 사랑을 향한 갈망이 있어
사랑은 찾기 어려운 것
내 환멸의 자국이 남아있어, 남아있어
그건 오직 사랑만이 지울 수 있지
내 환멸의 자국이 남아있어, 남아있어
그건 오직 사랑만이 지울 수 있지

Porém (ai, porém)
Há um caso diferente
Que marcou um breve tempo
Meu coração para sempre
Era dia de carnaval
그렇지만 (아, 그렇지만)
뭔가 다른 때가 있어
순식간에 흔적을 남긴
내 마음에 영원히
그건 카니발의 날이었어

Carregava uma tristeza
Não pensava em novo amor
Quando alguém que não me lembro anunciou
Portela, Portela
O samba trazendo alvorada
Meu coração conquistou
슬픔을 안고 있었어
새 사랑은 생각지 않았지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가
“Portela, Portela” 하고 외쳤을 때
동틀 녘을 데려오는 삼바는
내 마음을 정복했어

Ah, minha Portela
Quando vi você passar
Senti meu coração apressado
Todo meu corpo tomado
Minha alegria de voltar
아, 나의 Portela
네가 행진해 가는 걸 볼 때
가쁘게 뛰는 심장을 느꼈어
사로잡힌 온몸
돌아온 나의 기쁨

Não posso definir aquele azul
Não era do céu, nem era do mar
Foi um rio que passou em minha vida
E meu coração se deixou levar
그 푸른색은 정의할 수 없지
하늘에서 온 것도, 바다에서 온 것도 아냐
그건 내 인생을 흐른 강이었어
그리고 내 마음은 휩쓸려갔지

Cartola, Verde Que Te Quero Rosa

Verde como o céu, azul a esperança
Branco como a cor da paz ao se encontrar
Rubro como o rosto fica junto à rosa mais querida
É negra toda tristeza se há despedida na Avenida
É negra toda tristeza desta vida
하늘 같은 초록, 희망은 파랑
만남의 순간 평화의 색 같은 하양
가장 사랑 받는 장미와 함께인 얼굴 같은 붉음
대로에 이별이 있다면 모든 슬픔은 검은색이야
이 삶의 모든 슬픔은 검은색이야

É branco o sorriso das crianças
São verdes, os campos, as matas e o corpo das mulatas
Quando vestem verde e rosa é Mangueira
É verde o mar que me banha a vida inteira
아이들의 미소는 하얀색이야
들판과 숲과 흑인 여인의 몸은 초록이야
초록과 분홍을 입을 때는 Mangueira야
내 일생을 씻기는 바다는 초록이야

Verde que te quero rosa (é a Mangueira)
Rosa que te quero verde (é a Mangueira)
초록이여, 너를 원해 분홍으로* (그건 Mangeuira야)
분홍이여, 너를 원해 초록으로 (그건 Mangueira)

* 스페인의 시인 Federico García Lorca의 시 ‘Verde Que Te Quiero Verde’을 인용한 구절. ‘초록이여, 너를 원해 초록으로’으로 번역되며, Cartola는 이를 Mangueira의 상징인 초록과 분홍으로 바꿨다. 단, 첫 소절의 verde를 호격이 아닌 1인칭 주어로 볼 경우 ‘네가 분홍이길 바라는 초록 / 네가 초록이길 바라는 분홍’으로도 번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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