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실
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했다. 15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추모제가 열렸다. 18일에 열린 범국민대회에서 시민들은 서울광장에서 광화문까지 행진하려 했고 경찰은 이를 저지했다. 건조한 사실로서 기술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일 년은 짧지 않은 시간이어서 그간 쌓인 사실은 무수할 것이지만 그 중 이견 없이 받아들여지는 사실은 고작 이 정도다. 남은 것은 해석이다. 사실을 밝히자고 주장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지난한 해석 싸움을 벌여야 한다.
2. 해석: 내전
과도한 진압이었다. 집회가 늘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모두가 애도했던 비극을 추모하는 자리여서 새삼스럽다. 이 진압의 과도함이 세월호 참사의 무게를 다시 저울질하게 한다. ‘찔리는 게 있으니 더 저런다’는 음모론의 차원이 아니다. 이 진압 이후 세월호라는 기표는 모두의 슬픔에서 저마다의 적대로, 정치의 문제로 읽혀야 한다는 뜻에서 그렇다.
힘과 힘이 한 국가 안에서 부딪힌 내전이었다. 사람들은 이 내전이 누구 때문에 일어났는지를 놓고 다툰다. 폭력적인 시위대를 탓하거나 경찰의 불법적인 진압을 탓한다. 국기를 불태우는 폭도를 탓하거나 물대포와 캡사이신을 탓한다. 그러나 잘못의 선후관계는 중요하지 않다. 내전은 18일 이전에 이미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세월호를 둘러 싼 가치 대결의 장에서 서로가 공유할 가치를 합의하지 못했고, 그래서 누구의 가치가 옳은지를 오직 힘으로 증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잘못된 전개라고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전쟁은 차라리 불가피했다. 새로운 시민적 가치는 선험적 원리가 아니라 전쟁 끝의 효과로서 도출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공간을 직접 점유하는 시위 현장에서 전쟁은 비유가 아닌 현실로 펼쳐졌다.
생명과 이윤의 전쟁이었다. 누군가는 불법 집회와 법질서 수호의 전쟁으로 불렀다. 차마 자신이 이윤의 편이라고 자처하진 못하는 이들의 술수였으리라. 전쟁의 이름이 두 가지이니 전략도 두 가지다. 생명의 편이 정당하다고 말하거나 법 대결에서도 우리는 정당하다고 말하거나. 절실한 것은 전자다. 가치를 새로 쓰기 위한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법 보존적 폭력이 아니라 법 정립적 폭력을 말할 때 우리는 더 정당하기 때문이다. 의회에서 법을 개정하려는 노력마저 그래야 한다. 법 정신을 아무리 연역해도 제2의 세월호를 구조할 수 없다면 우리는 법 외부의 가치를 법에 새겨야 한다.
그러니 ‘세월호 유가족에겐 마음만 있고 정치는 없다. 정치는 오히려 세월호를 잊으려는 이들에게만 있다’는 대자보를 지지할 수 없다. 정치외교학과 학생이 쓴 대자보였다. 정치를 배우는 그에게 정치는 얼마나 사악한 것일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순수하길 강요받는 세월호 피해자들을 생각했다. 내가 본 세월호 피해자들은 정치적 저항의 언어를 충분히 구사하고 있었다. 합의되지 못한 가치들을 모두에게 설득하기 위해 최선의 정치를 펼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해야 한다. 세월호는 더없이 정치적이며 오히려 시민 정치의 첨단에 서 있다고. 그게 세월호를 잊지 않을 이유라고.
3. 감상: 사각형 속 사각형
두 개의 사각형이 있었다. 두 면의 차벽과 두 면의 경찰 병력이 만든 큰 사각형이 있었다. 그 큰 사각형 속 사각형, 한 면의 차벽과 세 면의 경찰 병력이 만든 더 좁고 더 치열한 사각형을 떠올린다. 물대포와 조명과 카메라와 경고방송을 겹겹이 배치한 스펙터클은 파놉티콘 같아서 자꾸 겁이 났다. 차벽 위로 머리를 빼꼼 내민 물대포가 겁먹은 눈엔 꼭 괴물처럼 보였다. 장치들의 구성이 사람의 의도를 넘어 생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늘 먼저 달려가 싸우던 친구가 한 말이기도 했으니 소심한 성정의 문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겁 많은 성격은 분명 문제였다. 솔직한 마음 같아선 작은 사각형도 큰 사각형도 벗어나고 싶었다. 따가운 눈과 젖은 가방과 신발이 싫었다. 개인의 신념은 이다지도 하찮다. 그런데도 나를 떠나지 못하게 했던 것들의 목록을 헤아린다. 미안함과 고마움과 우정들, 그렇게 질끈 잡았던 손들을 헤아린다. 무엇보다도 눈빛들을 헤아린다. 눈빛들, 때때로 젖어있던 그 눈빛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