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와서 배운 탁월한 사람 분류법 중엔 개 타입/고양이 타입과 god 타입/신화 타입이 있다. 이를테면 네놈은 개와 god를 좋아하는 물러터진 놈이겠구나 하고 단언하는 식이다. 저마다의 개별성을 존중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윤리라지만 인간이 또 그렇게 특별나기는 어려워서 몇몇 기호의 조합으로 대충 번역 가능하리라 믿어버린 분류법이다. 주변의 사람들을 이 곱하기 이의 경우의 수, 혹은 이차원의 좌표평면에 집어넣고 나면 그 사람을 파악한 것만 같은 안락함이 찾아든다.
그러는 나는 정작 어느 것도 확신을 갖고 고르지 못했다. 못 고르거나 골랐지만 엉망진창이었다. 신화 팬이었던 누나를 따라 고를 것도 없이 신화를 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박진영이 쓴 god 노래가 좀 더 좋았던 것 같고 딱 봐도 개 타입이면서 몇몇 고양이 타입들의 세련된 맛을 동경하며 고양이 타입 흉내를 냈다. 사실 다 틀렸다. 잘 만든 팝은 뭐든 좋아하고 동물은 종류 불문 다 무서워한다.
쓸데없는 동경을 지우고 부끄럽지 않으려 애쓴다. 일방향의 확신이 있다면 눈치 보지 않아도 좋다. 확신을 많이 가진 사람에게 그렇게 배웠었다. 확신의 방향을 잃고 나면 아무거나 쓴다. 아무거나 쓰다 보면 종이 위로 내 안의 기호들이 쏟아져 방향을 고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내면이 상상적인 구성물이든 말든 문장으로 풀어쓴 나는 그렇게만 가능하다. 그런 식의 정돈된 생애가 필요하다.
거짓말처럼 훈련 중에 첫눈이 내렸는데 소원을 빌지 않았다. 그래도 좋을 것 같았다. 첫눈은 녹고 보름달은 지고 새해는 낡는다. 그래도 첫눈은 아름답고 보름달 아래 우리도 아름답고 새해 떡국은 끝내주게 맛있다. 좋아하는 계절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