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동물

지난주의 일이다. 

영등포에서 새벽 열차를 타고 부산에 도착한 후로 하루 넘게 샤워를 하지 않았었다. 끈적이는 날씨에 씻지 않는다는 건 꽤 큰 의지를 요구하는 나태다. 마땅히 해야 할 모든 의무에 어깃장을 놓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런 유치한 우울은 보통 사랑받지 못한다는 문제에서 비롯한다. 더 나은 애정이 필요했다. 구체적인 불만의 목록을 작성하지도 못하면서. 움직이기 싫었다. 그러나 종일 웅크리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씻어야 했다. 인간이란 가만두면 이렇게나 냄새나고 끈적해지는 동물이란 걸 깨닫게 하는 계절이다, 여름이란 건. 

어색한 일이지만 동물성이 사회성에 기여하기도 한다. 식욕과 성욕에 대한 무수한 무용한 농담들이 그러하듯. 더 깊은 차원의 성품에도 기여한다. 지루한 삶에 말을 붙여가며 기껏 하루를 버티는 무의미한 동물이 인간이란 생각을 하면 화가 날 일에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었다. 기차 앞자리 사람이 무례하게 의자를 뒤로 젖혀도 동지의 이름을 팔아먹는 사람들을 보아도 말을 아꼈다. 그렇게 살아왔다. 

나쁜 쪽으로 기운다. 이젠 좋아하는 것들이 괜찮지 않아지는 순간에도 아무 말 못 하게 되었다. 사랑이 고장 나는 순간이 언제인지 분간조차 못 하게 되었다. 단절은 꿈의 형태로만 찾아왔다. 깨어있는 나는 삶을 욕망하지도 반성하지도 못한다. 꿈의 비밀은 소원의 성취라는 프로이트의 통찰로만 진짜 삶은 가끔 모습을 드러냈다. 이외의 나는 연기하는 나, 연기를 진짜로 믿는 나, 그걸 깨달은 나로 두서없이 나열된다. 

이래서는 삶이 제대로일 수 없다. 믿을 수가 없어 찬물로 샤워했더니 개도 안 걸리는 여름 감기를 얻으셨다. 일단 막힌 코가 뻥 뚫렸으면 좋겠다. 밍밍한 콧소리가 덜 나면 좋겠다. 그러면 오락실의 동전 노래방이라도 가서 큰소리로 노래를 불러야지. 다음은? 그다음엔? 이대로 욕망이 멈추지 않으면 좋겠다. 욕망을 욕망한다는 발화에 시작되는 순환고리 속에서 미치지 않을 수 있다면. 문제의 머리가 꼬리를 물었다. 다시 삶과 사랑의 문제가 되었다. 머리가 꼬리부터 먹어치운다면 끝은 어디쯤일까? 

이틀 전의 일이다. 아내의 어깨에 머리를 대고 잠에 빠진 중년 남성의 모습은 귀여웠다. 온도와 습도는 적당했고 종착역에 이른 열차는 조용했다. 그런데 그들은 정말 부부였을까? 그런 것쯤 중요하지 않은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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