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

쓰지 않아도 좋았다. 몇 번이고 달이 차도 기울지 않을 서정이라면. 오늘은 별수 없이 말을 짓는다.

서울은 폭염이거나 장마였다. 물속을 헤집듯 함부로 걸었다. 직선으로 걸었고 가끔은 달렸다. 직선의 정의 속에는 끝의 개념이 없어서 끝의 행운도 행운의 끝도 예감하지 못했다. 이렇게 살고 싶진 않았던 것 같은데. 달리 더 갖고 싶은 삶도 알지 못해 예감 없이 살았다.

잃을 줄 알았을 때 아버지를 가장 사랑했다. 뻔한 현실로 돌아온 그를 이제 다시 지겨워한다. 가족 노래가 적당히 슬플 때 가족은 미워졌다. 동화를 닮을 수 없을 때 가족은 밉고 슬펐다. 예쁜 작별 대신 서로의 짐으로 남을 때, 새 가족을 위해 옛 가족은 거짓말이 될 때, 포근함이 끈적하게 섞여갈 때, 가족은 밉고 슬픈 거짓말이었다. 가족 노래의 가사를 바꿔 따라 부르는 선량한 내가 좀 끔찍했다.

지난주엔 어머니와 봉은사에 다녀왔다. 가로로 눈을 뜬 불상 앞에선 달리 빌 것이 없어 곁에서 기도하는 사람을 살피시라 빌었다. 어머니를 배웅하고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함께 갔던 63빌딩을 봤다. 이번에도 애매한 동색으로만 빛났다. 비슷한 미래를 예감했다.

윤종신·루싸이트 토끼, 〈사라진 소녀〉, 미스틱엔터테인먼트,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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