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에 명왕성 사진이 올라왔다. 9년 전 나사가 쏘아 올린 탐사선이 가까이에서 명왕성 사진을 찍은 덕분이다. ‘새로운 한계(New Horizons)’라는 이름의 탐사선이 그렇게나 빠르다든가, 그렇게 발견한 명왕성이 예상보다 크다든가, 유일하게 미국인이 발견했던 행성인 명왕성에 다시 미국이 도착했다든가 하는 말들은 별로 와 닿지 않았다. 과학에 과문한 탓이다. 대신 사진의 고즈넉한 색감을 곱씹었다. 태양에서 먼 탓에 잔뜩 얼어있는 표면, 그 아래로 한참은 더 얼어있을 얼음 뿌리를 상상했다. 어둡고 춥다는 이유로 갖게 된 플루토라는 이름, 지하의 신 플루토를 맴도는 위성들의 이름을 떠올렸다. 그러자 춥고, 아스라이 멀고, 거대한 것들을 생각하면 느껴지는 외로운 평화가 찾아왔다.
그리고 제목이 명왕성인 세 개의 노래를 들었다. 어떤 곡은 차갑고 어떤 곡은 뜨겁다. 온도가 다르니 정서도 제각각이지만, 신디사이저 소리를 돌출시킨 점은 닮아서 한데 소개해도 좋을 것 같았다. 나온 순서대로 길지 않게 소개한다.
Björk
뷔욕의 〈Pluto〉는 1997년에 나왔다. 이 곡이 실린 《Homogenic》은 일렉트로니카와 현악을 섞어 조국 아이슬란드에 헌정한 음반이다. 18년이 지나도 낡은 기색이 없는 음반 속에서 〈Pluto〉는 특히 신경질적으로 폭발한다. 빙하가 많은 아이슬란드는 분명 명왕성과 닮았는데도 비욕은 한적한 풍경 대신 화산 같은 공격성을 담았다. 플루토란 이름으로 명왕성 대신 지하의 신을 끌어들인 셈이다. 그리고 꼭 10년 뒤, 뷔욕은 이 곡을 함께 만든 Mark Bell과 다시 협업해 비슷하게 날카로운 〈Declare Independence〉라는 노래를 냈다. ‘독립을 선언하라’는 이 외침은 덴마크에 맞서는 그린란드에 바쳐졌고, 중국에 맞서는 티벳을 향하기도 했다. 굳이 조국과 독립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뷔욕은 약자의 편에서 언제든 서정 대신 저항을 택할 것이다. 춥고 어두운 별에서도 기어이 그 아래 화산을 찾아내고 말 것이다.
Casker
캐스커의 〈Pluto〉는 그로부터 12년 뒤인 2009년에 나왔다. 캐스커의 이준오는 얼마 전 아이슬란드 여행기를 책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자연히 두 곡 사이에 있을지 모를 연관을 염두에 두게 된다. 비슷한 점을 찾으려 들면 신스 베이스를 비롯한 강력한 소리가 닮은 듯도 하다. 그러나 캐스커의 플루토는 지하의 신이 아니라 별을 가리킨다. 캐스커는 2006년 행성의 지위를 잃은 명왕성의 처지를 “버려지기 전부터 보이지 않던 별”이라는 첫 가사로 요약한다. 이 처지는 곧 “언제나 뿌리쳐지는” 시린 짝사랑 이야기와 겹쳐진다. 〈Pluto〉는 유독 겨울 냄새가 나던 EP 《Your Songs》에서도 가장 추운 노래다. 짝사랑은 원망이 되어 터져 나오지만 끝내는 외로운 사람만이 남았다. 캐스커 1집의 〈Luna〉, 3집의 〈달〉에 이어 이 곡 역시 우주를 떠도는 천체의 외로움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Idiotape
분위기를 바꿔 2011년에 나온 이디오테잎의 〈Pluto〉를 듣는다. 〈Pluto〉가 수록된 이디오테잎의 1집 《11111101》은 신디사이저의 원초적인 소리를 록킹하게 몰아친다. 많지는 않아도 강한 소리들로 질주하고 치받고 끝맺는다. ‘더 지니어스’ 같은 게임형 예능이 좋아할 만하다. 말을 덧붙일 것도 없이 직선적인 이 곡의 플루토 역시 명왕성보다는 지하의 신에 가까워 보인다. 2집의 〈Styx〉 역시 명왕성의 위성 ‘스틱스’가 아니라 저승을 흐르는 강일 듯하다. 그렇지만 나사에서 보내준 명왕성 사진과 함께 〈Pluto〉를 듣는 일이 어색하지도 않다. 그저 얼음과 암석으로 이루어진 명왕성을 멋대로 평화롭게 상상했던 것처럼 우주 어딘가 이런 긴장이 있으리라 상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우주에 춥고 외로운 천체들의 수만큼 뜨겁게 춤추는 천체들이 존재한다면 그 모든 몸짓에 이 노래가 함께해도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세 개의 〈Pluto〉 모두를 각자가 속한 음반에서 가장 좋아한다. 이들은 언제고 분노와 외로움과 행복을 전해왔으며 가장 가까이서 바라본 명왕성 사진과 함께라도 아마 그러할 것이다. 건조한 사실에 감정을 불어넣는 노래의 몫은 명왕성에 대해서도 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