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허황된 가설로 글을 시작해 본다: 브라질에도 시티팝이 있었다. 지역도 장르명도 다르지만, 비슷한 꿈을 품은 채 근사해진 이국의 탁월함들이 있었다. 닮음을 핑계로 낯선 좋음을 나누고 싶었다.

시티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부가 넘쳐흐르던 일본의 80년대, 서양의 세련된 소리를 비싼 편성으로 담아냈는데. 소프트 록*, 재즈 퓨전, 훵크, 소울이 정갈하게 뒤엉킨 그루브에 가요코쿠**의 서정을 푹 적셔뒀는데.
* 소프트 록(Soft Rock): 70년대 미국 웨스트 코스트를 중심으로 발전한 부드럽고 정교한 팝 록.
**가요코쿠(歌謡曲): 전후 일본의 대중가요. 서양 화성을 수용하되 단조 중심으로 일본적 선율을 유지했다.
그리고 지구 반대편. 비슷한 사정이 브라질의 80년대에도 있었다. 독재의 기운이 걷힐 무렵, 전통과 정치 대신 미국적 쾌감을 고른 이들이 있었다. 거리가 아닌 스튜디오에서, 부기와 흑인 음악과 신시사이저를 MPB*에 밀어 넣는 젊음들이 있었다.
* MPB(Música Popular Brasileira): 60년대 이후의 브라질 대중음악. 초기에는 사회 참여적·민족적 성격이 강했으나 점차 팝의 영향을 포괄하는 표현으로 쓰였다.
그러니 닮았을 수밖에. 비슷한 영향 아래, 미국 서부의 근사함을 향해 달려갔으니. 화성과 그루브를 수혈받고도 지역적 색채를 입히며 끝내 이국적인 복잡성을 성취했으니.
두 나라를 직접 잇는 연결선도 있었다. 60년대 보사 노바의 세계적 유행 이후, 일본은 브라질을 세련된 라틴으로 꾸준히 소비해왔다. 인구의 왕복도 있었다. 20세기 초엔 가난한 일본인들이 브라질을 향했고 80년대엔 일본계 브라질인들이 일본을 다시 찾았다*.
* 데카세기(出稼ぎ): ’타국에서의 노동’이란 뜻으로 브라질 등 남미로 이민한 일본인을 뜻했으나, 현재는 일본으로 다시 돌아온 일본계 브라질인을 주로 가리킨다.
이쯤 되면 시티팝과 MPB를 이은 인물들이 있었을 법도 한데. 여러 후보를 살폈지만 또렷한 이름 하나를 얻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왕 미스터리일 거라면 좀 더 호들갑을 떨어도 되겠지. 그런 뻔뻔함으로 80년대 브라질의 4곡을 골랐다.
Zizi Possi
Deixa Eu Te Regar (1983)
브라질의 시티팝을 믿게 만든 첫 노래였다. 브라스가 열고 플룻이 받쳐주는 서정적 그루브였다. 다만 노랫말은 과감했다. 동물적인 비유로 사랑을 구하는 언어였다. 타오르는 사랑과 생장하는 자연. 일본에선 담지 않을 관능이 브라질이어서 가능했다. 그 또한 좋았다.
Emílio Santiago
Pelo Amor de Deus (1982)
직역하면 ‘신의 사랑으로’, 의역하면 ‘제발’. Emílio는 구차한 제목의 노래로 연인에게 용서를 구한다. 정작 곡은 이토록 흥겨운 디스코-삼바면서. 브라스와 베이스가 이끄는 그루브에 스트링까지 착실히 쌓았으니 확신의 미국 팝인데 쏟아지는 타악과 화성의 꾸밈은 누가 뭐래도 브라질이다. 이런 능청이 좋았다.
Leila Pinheiro
Tudo Em Cima (1983)
베이스, 건반, 기타로 필승의 진행을 꾹꾹 밟는다. 거기에 하늘하늘 청아한 여성 보컬의 가창까지. 꼭 시티팝 같은데 사이사이 브라질리언 재즈가 침투한다. 쉼 없는 쾌감 앞에, 노랫말도 당대의 구어를 총동원해 좋다는 감탄사를 반복한다. 좋아. 최고야. 그런 솔직함이 좋았다.
Ney Matogrosso
Vida, Vida (1981)
틀자마자 山下達郎Yamashita Tatsuro의 〈Sparkle〉이 떠올랐다. 가볍게 긁는 기타 스트로크, 브라스와 코러스로 밀어붙이는 기세, 하늘에 닿을 듯 솟아오르는 가창까지. 그런 활력으로 Ney는 생의 신비를 노래한다. 물질적인 동시에 관념적인, 그래서 무한히 아름다운 삶을 갈망한다. 무교도적 신실함 같아 좋았다.
브라질과 일본의 닮음을 예증할 셈이었는데. 쓰고 보니 그저 좋아하는 브라질이 됐다. 관능과 능청과 솔직함과 신실함. 넷을 한 단어로 줄이면 결국 사랑. 끝내 사랑인 브라질을 나누고 싶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