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로 끝말잇기: 브라질의 오리와 참새와 구슬 놀이

Eliane Elias가 서울재즈페스티벌을 찾는다. 탁월한 재즈 피아니스트지만 나는 그를 브라질의 목소리로 먼저 떠올린다. 그래서 〈O Pato〉를 다시 들었다. 더듬더듬 가사를 짚다 보니 옛 노래들이 이어 떠올랐다. 끝말잇기를 하듯 오리에서 참새로, 참새에서 또 구슬 놀이로. 이 연쇄가 못내 예뻐 차례로 옮긴다.

오리 (O Pato)

〈O Pato〉는 1940년대의 노래다. 보사 노바가 없던 때의 노래지만 João Gilberto가 부른 이후론 보사 노바의 고전이 됐다. 자칫 어려운 선율을 가뿐히 풀어내는 우화여서 많은 이들이 다시 불렀다. Gilberto Gil박자를 멋대로 타는 얼터너티브로, Adriana Partimpim동요로 위장한 사이키델릭으로, Eliane Elias는 말끔한 그루브의 재즈 팝으로.

여기 네 마리의 물새가 있다. 오리Pato, 청둥오리Marreco, 거위Ganso, 백조Cisne. 닮은 듯 다른 넷이 합창을 준비한다. 한국이었다면 꽥꽥 울었겠지만 여기서는 뀅뀅Qüem Qüem. 형편없는 노래로 최선을 다한 새들은 풍덩 연못으로 뛰어든다. 가사가 그리는 풍경은 여기까지. 별 대단한 뜻도 없이 그저 시끄럽고 평화롭다. 덕분에 온 세상을 침착하게 바라보는 우화의 눈을 잠시 배운다.

옥수숫가루 위의 참새 (Tico-Tico No Fubá)

〈O Pato〉의 가사는 물새들이 부르던 노래의 제목을 인용한다. 〈Tico-Tico No Fubá〉. 1931년 발표된 Choro* 장르의 연주곡에 가사가 뒤늦게 붙었다. 유럽의 춤곡 같으면서도 선율만은 브라질이어서 여러 음악가의 사랑을 받았다. 우아한 피아노 속주의 Daniel Barenboim부터 월드컵을 맞아 피아노와 팝을 배합한 Lang Lang & Bebel Gilberto까지.

* Choro: 19세기 브라질에서 등장한 춤곡 장르. 폴카, 왈츠, 탱고에 아프리칸 리듬이 섞였다.

Tico-Tico는 포르투갈어로 참새*. 화자는 옥수숫가루에 파묻혀 짹짹대는 참새를 쫓아내려 애쓴다. 참새의 사정도 딱하지만 어렵게 모은 곡물을 내어줄 순 없으니. 가쁘게 새를 쫓는 호흡이 꼭 20세기 무성 영화의 우스꽝을 닮았다. 어쩌면 이건 ‘톰과 제리’를 톰의 눈으로 다시 읽는 일. 짧은 희극에도 밉지 않은 설득력이 실린다.

* ‘짹짹’ 소리를 흉내 낸 단어로 들린다. 이 단어를 처음 배웠을 때, 나는 곽재구 시인의 동화 『아기 참새 찌꾸』를 떠올렸다. 그는 ‘찌꾸’가 ‘초원의 개척자’를 뜻한다고 썼지만, 아마 Tico-Tico란 단어 역시 알았던 모양이다.

떼굴떼굴 (Teco-Teco)

‘Tico-Tico’를 발음하다 비슷한 발음의 〈Teco-Teco〉를 떠올렸다. Ademilde Fonseca가 부른 옛 노래지만 나는 이 노래를 Gal Costa의 목소리로 처음 들었다. 전자 건반이 현대화한 연주 위로 그는 더 느리고 차분하게 노래한다. 어딘지 확신에 찬 목소리여서 조성이 바뀔 때의 낙차는 도리어 서늘해진다.

‘Teco-Teco’는 구슬이 떼굴떼굴 굴러가는 모양을 가리키는 의태어. 노래는 구슬치기로 시작해 유년의 기억을 짚어간다. 인형 옷을 만드는 대신 기둥을 타고 연을 날리던 여자아이.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기쁨을 배운 어느 날의 예배당. 생애는 구슬처럼 굴러 가수가 된 지금에 이른다.

이토록 사적인 고백 앞에선 듣는 이들도 제 유년을 되짚고 만다. 기분만 남은 몇몇 장면으로, 저마다의 생을 다시 조립하게 된다. 그렇게 미숙했던 나를 용서하는 너그러운 어른의 눈과 함께한다.


오리의 평온, 참새의 연민, 구슬의 용서. 노랫말로 이은 마음의 운동이 이상한 위로처럼 느껴졌다. 그 마음을 나누고 싶어 우리말로 가사를 옮겼다.

O Pato

O pato vinha cantando alegremente, qüem, qüem
Quando um marreco sorridente pediu
Pra entrar também no samba, no samba, no samba
오리가 기쁘게 노래하며 오고 있었어, 꽥 꽥
웃고 있는 청둥오리가
자기도 삼바에 끼워달라 요청할 때 말이야, 삼바에, 삼바에

O ganso gostou da dupla e fez também qüem, qüem, qüem
Olhou pro cisne e disse assim, vem vem
Que o quarteto ficará bem, muito bom, muito bem
거위는 그 2인조가 맘에 들어 따라 했어, 꽥 꽥 꽥
거위를 보고 이렇게 말했지, “이리 와, 이리 와
4중창은 근사할 테니, 아주 좋고 아주 멋질 테니”

Na beira da lagoa foram ensaiar
Para começar o tico-tico no fubá
A voz do pato era mesmo um desacato
Jogo de cena com o ganso era mato
Mas eu gostei do final quando caíram n’água
E ensaiando o vocal
연못가에서 그들은 연습을 하러 갔어
Tico-Tico No Fubá를 시작하려고
오리의 목소리는 거의 무례할 지경이었고
거위와의 즉흥 연습은 엉망이었지
그치만 나는 결말이 마음에 들었어
가창을 연습하며 물에 빠지는 순간이

Qüem, qüem, qüem, qüem
Qüem, qüem, qüem, qüem
Qüem, qüem, qüem, qüem
꽥, 꽥, 꽥, 꽥
꽥, 꽥, 꽥, 꽥
꽥, 꽥, 꽥, 꽥


Tico-Tico No Fubá

O tico-tico tá
Tá outra vez aqui
O tico-tico tá comendo meu fubá
O tico-tico tem, tem que se alimentar
Que vá comer umas minhocas no pomar
참새가 있네
여기 또 있네
참새가 내 옥수숫가루를 먹고 있어
참새는 먹어야 하긴 하지
과수원에서 지렁이들이나 먹으러 가지

Ó por favor, tire esse bicho do celeiro
Porque ele acaba comendo o fubá inteiro
Tira esse tico de cá, de cima do meu fubá
Tem tanta coisa que ele pode pinicar
Eu já fiz tudo para ver se conseguia
Botei alpiste para ver se ele comia
Botei um gato, um espantalho e alçapão
Mas ele acha que fubá é que é boa alimentação
오 제발, 그 짐승을 헛간에서 쫓아줘
걔가 옥수숫가루를 다 먹어 치우거든
이 참새를 여기서, 내 옥수숫가루 위에서 쫓아내
녀석이 쪼아먹을 게 이렇게 많은데
난 이미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어
걔가 먹는지 보려고 모이도 놓아봤어
수탉과 허수아비와 덫도 놓아봤지
그치만 녀석은 옥수숫가루가 좋은 식사라 생각하나 봐


Teco-Teco

Teco, teco, teco, teco, teco
Na bola de gude era o meu viver
Quando criança no meio da garotada
Com a sacola do lado
Só jogava p’ra valer
Não fazia roupa de bonecas nem tão pouco convivia
Com as garotas do meu bairro que era natural
Subia em postes, soltava papagaio
Até meus quatorze anos era esse o meu mal
떼굴 떼굴 떼굴 떼굴 떼굴
내 인생의 전부는 구슬 놀이였어
어릴 적 아이들 틈에선
봉투를 옆에 둔 채
오롯이 진심으로 놀았지
인형 옷을 만들지도 않았고
동네 여자아이들과 어울리지도 않았어,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지
기둥을 타고 연을 날렸어
열네 살까진 그게 내 버릇이었지

Com a mania de garota folgazã
Em toda parte que passava
Encontrava um fã
Quando havia festa na capela do lugar
Era a primeira a ser chamada para ir cantar
장난 많은 소녀의 버릇 덕에
가는 곳마다
팬이 생기곤 했어
동네 예배당에서 파티가 열릴 때면
노래 부르러 오라며 불리는 첫 번째 아이였지

Assim vivendo eu vi meu nome ser falado
Em todo canto, em todo lado
Até por quem nunca me viu
E hoje a minha grande alegria
É cantar com cortesia
Para o povo do brasil
그렇게 지내며 나는 내 이름이 불리는 걸 봤어
모든 곳에서, 모든 방향에서
내가 본 적도 없는 사람에게서까지
그리고 지금, 나의 큰 기쁨은
예의를 다해 노래하는 일이야
브라질 민중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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