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뜨끈한 행복: Leny Andrade의 메타 삼바들

코끝이 시릴 무렵 낡은 재즈를 찾는다. 캐럴로 시작해 새해를 맞을 때까지. 올해는 미국 말고 브라질의 Leny Andrade를 찾았다. 뻔한 맛을 바라며 옛 음반을 차례로 들었고, 뜻밖에 대단한 연대기를 만났다. 주류의 외곽에서 단단히 다진 행복의 영토를 전파하고 싶었다.

브라질의 Ella Fitzgerald, 브라질의 Sarah Vaughan. 브라질 밖에서 Leny는 이토록 거창한 이름으로 불렸다. 과장인가 싶다가도 듣고 보면 그럴듯했다. Ella의 빛나는 스캣, Sarah의 그윽한 두께, 브라질의 말맛이 다 있었으니.

Leny Andrade(우)와 Tony Benett(좌). Tony는 Leny에게 ‘브라질의 Fitzgerald’라는 별명을 붙였다.

나는 그를 브라질의 밖이 아닌 내부로서 접했다. 내게 Leny는 브라질을 힘찬 재즈로 번역하는 목소리였다. 그래서 궁금했다. 이토록 브라질인데, 왜 그는 브라질의 바깥으로 기억될까. 당대의 동료들과 협업하고도, 왜 그는 중심이 아닌 외곽에 머물렀을까.

마침 좋아하는 Leny의 노래들이 삼바에 대한 삼바, 일종의 메타 삼바였다. 노랫말에서 답을 구하고 싶었다.

속삭이지 않고도, 보사

1958년, 15살의 Leny가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보사 노바가 막 태어날 무렵이었다. Nara Leão의 아파트가 보사 주법을 잉태할 때, Leny는 10분 거리의 유흥가 Beco das Garrafas술병들의 골목에서 스캣을 토해내고 있었다.

Copacabana 해변에 위치한 Nara Leão의 아파트.

Leny는 보사 시대의 대립항 같았다. 아파트의 서정과 유흥가의 역동이 같을 순 없었다. 보사가 삼바 리듬을 정교하게 추상해 갈 때, Leny는 삼바에 비밥*의 기세를 더했다. 아파트가 미니멀한 유토피아를 그릴 때, 유흥가는 부글거리는 유포리아를 꿈꿨다.

* Bebop: 1940년대 등장한 재즈의 하위 장르. 빠르고 복잡한 즉흥 연주로 예술적, 기교적 측면을 강조했다.

그런 포부가 데뷔 음반의 첫 곡 〈Sambop삼바+비밥〉에 담겼다. 노래 속 Leny는 ‘뻣뻣한 삼바’가 답답하다며 유려한 스캣을 선보인다. 뜻 없는 멜로디로 앞뒤의 노랫말을 설득한다. 내가 아는 음악적 행복은 이토록 요란하고 뜨겁다고.

그치만 이상했다. 반대편 같던 Leny는 꾸준히 보사를 불렀다. 보사의 주역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레퍼토리를 노래했다. 대표곡 〈Estamos Aí우리는 여기 있어〉에 이르러선 보사의 일원을 자처하며 보사의 승리를 선언하기까지 한다. 이 간극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참을 더 들은 뒤에야 얼핏 가설을 세웠다. 나는 그가 장르명을 꼬리표가 아닌 목표로 여겼다고 믿는다. 보사 노바는 ’새로운 흐름‘이란 뜻이니, 그 이념을 공격하는 대신 확장하는 쪽을 택한 것이리라 짐작한다. 속삭이지 않아도, 가쁘고 뜨거운 숨으로도 보사일 수 있음을 증명하면서.

장르를 가르는 일은 늘 어렵고 때때로 무용하다. 그러나 장르가 설명이 아닌 깃발로 쓰일 때, 장르는 분류를 넘어선 공동체의 일이 된다. 같은 뜻을 믿고 책임을 나누겠다는 든든한 결의. 나는 Leny의 보사를 그런 의미로 읽었다.

〈Sambop〉이 실린 음반에서 Leny는 보사 노바의 대표곡인 〈Samba de uma Nota Só〉를 함께 실었다.

저항하지 않고도, 삼바

〈Estamos Aí〉가 나온 1965년, 보사의 처지는 순탄치 않았다. 독재 정권이 들어서자 사랑과 평화를 노래하는 일은 멋쩍어졌다. 노래는 시대를 비추는 거울, 치열한 정치적 은유여야 했다. 불행한 민중에게 서정이라니. 한갓된 위선이자 구식 같았다.

Leny는 그런 분위기를 원치 않았다. 노래는 아름다운 위로여야 했다. 그런 믿음이 〈A Resposta답장〉에 담겨 있다. 좋은 삼바는 민중이 즐겨 부르는 삼바라고. 가난은 도처에 있으니 우리는 좀 더 귀한 걸 들려줘야 한다고. 평화와 사랑과 태양과 바다를 노래해야 한다고. 비싼 아파트에 살며 빈민가를 노래하는 것도 퍽 우습지 않냐고.

이듬해 Leny는 브라질을 떠났다. 행선지는 멕시코. 망명한 음악가들과 재즈 팬이 모인 곳이었다. 고국의 음악이 첨예하게 투쟁할 때 Leny는 브라질의 호시절을 노래했다. 덕분에 브라질은 그를 잊어갔지만 덕분에 그는 잊혀가던 브라질을 지킬 수 있었다.

몇 년 뒤, 브라질로 돌아온 Leny는 자신이 생각하는 보사의 역사를 노래로 불렀다. 〈Historinha da Bossa보사 이야기〉는 짧은 가사로 브라질 춤곡의 계보를 요약한다. 옛날엔 왈츠와 폴카가 흘렀다고. 뻔했으나 소박하고 행복했다고. 아름다운 전통은 삼바로 이어져 보사 노바가 되었고, 이제는 모두가 보사를 사랑한다고.

가사에서 두 가지 마음을 읽는다. 하나, 보사는 전통을 잇는 새 시대의 삼바다. 둘, 이 계보는 저항 가요를 언급하지 않고도 유효하다. 나는 이 둘째 믿음이 못내 낯설었다. 삼바는 태초부터 가난한 흑인의 음악이었는데. 백인의 보사에 흑인의 정열을 불어넣은 이가, 저항하는 흑인의 이야기에만 눈을 감는다니.

이번에도 나는 Leny의 행보를 반대가 아닌 균형으로 이해한다. 삼바는 물론 저항이었지만 동시에 무구한 기쁨이었으므로, 잊힐 뻔한 역사를 굳이 들춘 것이리라 짐작한다. 당대가 믿는 역사의 큰 줄기에 곁가지를 덧칠하는 수고. 나는 Leny의 역사를 그런 의미로 읽었다.


어쩌면 참 번거로운 삶이었다. 모두가 속삭일 땐 뜨겁게 노래했고, 모두가 진지해질 땐 해맑게 웃었다. 미니멀과 정의의 시대에 구태여 비주류를 자처했다. 덕분에 남은 건 뜨끈뜨끈한 행복을 뭉텅이로 꺼내놓는 힘찬 목소리. 한 해가 끝나가는 겨울에 그런 기운을 나누고 싶었다.


Sambop

Estamos Aí

A Resposta

Historinha da Bos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