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프의 깃발 들기: Ivan Lins, 〈Abre Alas〉

Chico의 삼바에 대해 썼을 땐 남태령이었다. 계엄으로부터 3주. 틀린 쪽은 분명했고 손잡은 우리는 다른 채로도 한마음 같았다. 그 끝에 얻은 성취도 있었다. 시린 날도 견딜 만했다.

계엄으로부터 2달. 지난한 시간이 이어졌다. 틀린 쪽은 뻔뻔해졌고 잡은 손을 놓게 하는 다툼도 늘었다. 저마다 터무니없는 정의감을 난사할 때 소중한 낱말들은 진창을 굴렀다. 매일 생중계되는 모욕 앞에서 좋았던 기억은 한 겨울밤의 꿈 같았다.

『시지프 신화』를 다시 읽었다. 수모에 질끈 감은 눈을 다시 뜨기 위해.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발음하기 위해. 신을 믿지 않은 채로도 신실함의 도덕률을 따르기 위해.

Albert Camus (1913-1960)

신들은 시지프에게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끊임없이 굴려 올리는 형벌을 내렸다. 그런데 이 바위는 그 자체의 무게 때문에 산꼭대기에서 다시 굴러떨어지곤 했다. 신들은 무용하고 희망 없는 노동보다 끔찍한 형벌은 없다고 보았는데 그것은 이유 있는 생각이었다.

(…) 나는 이 사람이 무겁지만 한결같은 걸음걸이로, 아무리 해도 끝장을 볼 수 없을 고뇌를 향해 다시 걸어 내려오는 것을 본다. 마치 호흡과도 같은 이 시간, 또한 불행처럼 어김없이 되찾아오는 이 시간은 바로 의식의 시간이다. 그가 산꼭대기를 떠나 제신의 소굴을 향해 조금씩 더 깊숙이 내려가는 그 순간순간 시지프는 자신의 운명보다 우월하다. 그는 그의 바위보다 강하다.

알베르 카뮈 (2016). 시지프 신화. (김화영, 역). 민음사. (원본 출판 1942년)

1974년의 Ivan Lins에게서도 비슷한 심정을 읽는다. ‘Abre Alas’는 ‘길을 열라’는 뜻이고 ‘Abre-alas’로 붙여 쓰면 ‘카니발의 기수’라는 뜻도 된다. 두 뜻을 겹치면 군중 속에서 깃발을 들고 길을 여는 이들이 떠오른다. 카니발의 일이었겠지만 2025년의 한국에선 집회 풍경으로 읽히고 만다.

Ivan Lins, 《Modo Livre》, 1974.

노래는 얼핏 경쾌하지만 위태롭다. 곡을 여는 건반은 음계를 오르내리며 불안한 정조를 그린다(0:00). 후렴은 ‘때가 오고 있으니 길을 열라’ 외치지만(0:16) 그 사이로 위악과 시니컬의 프리 코러스가 비집고 들어온다(0:46). Ivan Lins 특유의 화성이 여린 마음을 유혹한다. 애쓰지 말라고. 행복 따위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지 말라고. 그저 조용히 숨어 있으라고.

가사는 그렇게 용기와 체념 사이를 헤매다 그친다. 그러나 나는 이런 곡의 구조가 곧 이 노래의 의도라고 믿는다. 그는 깃발을 든다. 잠깐의 성취는 곧이어 미끄러진다. 회한과 번민과 의심. 그는 희망을 모른다. 그러나 다시 깃발을 든다. 들지 않으면 안 되어서 그것을 제 운명으로 삼는다. 깃발 들기를 반복하는 한 그에게는 시지프의 행복이 함께 한다.

남태령, 2024.

광장은 그 자체로 옳지 않다. 틀린 쪽도 광장의 기억을 먹고 자라므로. 그러니 매번 의심하고 실망할 것. 그렇게 세운 양심 위에서 다시 깃발을 들 것. 될 것 같지 않아도 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그런 다짐으로 노랫말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