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마음을 쓰자 2021년 8월 18일2021년 12월 12일 게시됨:일기 1. 근황 듣고 쓰는 게 무서웠다. 좋은 글을 바랄수록 더 그랬다. 단단한 논증과 단정한 말씨로 눌러 쓴, 힘껏 다정한 문장들을 갖고 싶었다. 의미를 벼려 좋아하는 리듬과 온도에 닿고 싶었다. 그러려면 기력이 필요했다. 몸을 덥히고 숨을 고를 여유가 필요했다. 처음엔 그럴 시간이 없었고 나중엔 그럴 자신이 없어졌다. 느낌은 단어를 밟고 피어나는 것이기도 해서, 쓰지 않으니 사랑하는 […]
비행기가 이륙하면 2020년 11월 17일2020년 11월 18일 게시됨:일기 1. 비행기가 이륙하면 죽음을 생각한다. 이번 추석엔 비행기로 고향을 오갔으니 이미 두 번. 엄마는 과로와 운동 부족과 가족의 내력으로 높아진 내 혈압을 수시로 쟀다. 혈압에 좋다는 자주색 양파즙을 먹이기도 했다. 덕분에 세 번, 네 번, 다섯 번. 명절은 어쩌면 식탁 풍경. 흰쌀밥 위에 가시 바른 갈치살이 얹혔다. 이젠 애도 아닌데. 포슬한 부채감이 끈적하게 입 안을 […]
2019/2020 2020년 3월 21일2020년 8월 4일 게시됨:일기 결산 없이 서른을 맞았다. 3월의 절반이 지났다. 생의 결산은 여태 어려워 노래만 늘어놓는다. 사랑 대신 사람으로 들었다. 사람이 너무 어렵고 귀하고 우리는 그걸 자주 까먹는다. 사람이 구원이고 또한 저주일 때, 나쁜 쪽으로 기울지 않는 귀를 가질 수 있다면. 어릴 땐 슬프거나 아프면 울었는데. 요샌 존엄한 인간을 보면 운다. 선하면서 스스로를 다잡는 사람(정세랑, 2016)들. 《동백꽃 필 […]
설리, 고블린 2020년 2월 4일2020년 8월 31일 게시됨:노래 말하기를 한참 망설였다. 노래가 좋았고, 이유를 해명해보려 했지만 때를 놓쳤다. 안타까운 죽음 앞에 쉽게 말을 보태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기록하려는 마음이 앞선다. 2019년을 떠나보내고 있으니까. 가십이 아닌 작품으로 고인을 기억하고 싶으니까. 글로켄슈필로 시작하는 도입부가 근사했다. 레드벨벳이 〈Ice Cream Cake〉에서 뮤직박스로 선취했던 스산함이 같은 편곡자 Johan Gustafsson를 통해 이어진 듯했다. 그런데 레드벨벳과 달리 〈고블린 (Goblin)〉은 […]
풀 물병 크로키 숲 2019년 4월 17일2020년 10월 10일 게시됨:일기 1.풀을 읽는 눈빛 입사와 함께 회사 책상에 수경 식물을 들였다. 캘린더를 사나흘 간격으로 어슷썰어 물을 갈았다. 물이 줄고, 뿌리가 자라고, 날이 이어졌다. 마른 뿌리 두엇은 이미 버렸다. 생장에는 이유가 없고 시드는 일도 다르지 않다. 무구함은 어떤 눈에만 지극하다. 사멸은 어떤 눈에만 시리다. 의미는 눈빛으로 맺힌다. 풀을 곁에 두면서 그런 눈빛을 소망했다. 2.물병만 한 생애 한글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