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

쓰지 않아도 좋았다. 몇 번이고 달이 차도 기울지 않을 서정이라면. 오늘은 별수 없이 말을 짓는다. 서울은 폭염이거나 장마였다. 물속을 헤집듯 함부로 걸었다. 직선으로 걸었고 가끔은 달렸다. 직선의 정의 속에는 끝의 개념이 없어서 끝의 행운도 행운의 끝도 예감하지 못했다. 이렇게 살고 싶진 않았던 것 같은데. 달리 더 갖고 싶은 삶도 알지 못해 예감 없이 살았다. 잃을 […]

아버지와 가족

아버지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전화로 소식을 듣고 저 문장을 떠올렸다. 문장을 만들기 전의 기분이 기억나지 않는다. 비극은 말이 될 때만 슬퍼졌다. 문장만이 눈물이 되었다. 엄마랑 누나랑 김치찌개를 먹다 울었고 울지 않으려고 목덜미를 자꾸 쥐어뜯었다. 어떤 노래를 들어야 좋을지 몰랐다. 도망치고 싶었다. 다른 세계로 숨고 싶어 소설을 읽었다. “오늘밤에 월식이 있을 예정이라고 오제가 말했다.” 고작 월식이란 낱말 하나에 여러 […]

2016/2017

2016 사람을 좀 잃었고 또 얼마간 얻었다. 만날 수 있더라도 잃었고 만난 적 있더라도 얻었다. 머릿수를 셈해 작년과 올해를 저울질할 수는 없다. 그러니 사람의 문제에 있어서는 비겼다고 말해볼 참이다. 질 줄 알았으므로 비긴 것만으로도 이겼다. 노래에 달라붙은 정념에 무감해지는 것만으로도 이겼다. 2017 그러나 나의 세계는 정체했다. 나에게는 각론이 필요했다. 선언 다음에 올 작지만 확실히 쓸모있는 […]

N의 거짓말

모처럼 고향이었다. 부산의 부모님은 여덟 시 뉴스보다 먼저 하루를 마치셨다. 스마트폰 불빛으로 그들을 방해하다 잠을 청했다. 반듯한 사각형 천장을 보며 그간의 거짓말을 떠올렸다. 서울의 내 방들은 사각인 적 없었다. 도형의 귀퉁이는 화장실과 싱크대와 신발장을 이유로 뜯긴 채였다. 창문에선 밤새 빛과 소리와 냄새가 쏟아졌다. 새벽의 남색 사각형은 그렇게 무너졌다. 외로움은 헝클어진 모서리, 찌그러진 N개의 각을 타고 […]

2015

얻는 대신 버리기만 했던 해였다. 사랑과 혁명처럼 거창한 어휘는 가진 적도 없는데도 그랬다. 몇 년 치의 마음들을 여태 버리는 중이다. 지난해엔 이렇게 썼다. 시시한 인간에 불과한 나의 말과 행동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 없음을 알 때, 일단 뭐든 읽고 쓰면서 살아도 되겠다는 자신감을 갖춘다면 더 그럴듯하게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 절망적인 삶 앞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