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쓰고 싶어졌다.

가능한 덜어내는 글쓰기를 배워왔다. 단어와 조사와 문장부호를 빼고 또 빼서 남은 글만이 필연적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쓰려고 애썼다. 오래 애썼더니 이제는 그렇게 쓰지 않는 게 더 낯설다. 그렇지 않은 글을 더 쓰기로 다짐했다. 다르게 쓰고 싶어졌다. 사람들은 사족을 붙여서라도 잘 읽히는 친절한 글을 원하기 때문이다. 세 문장을 한 문장에 압축한 글 말고 한 문장을 세 문장으로 […]

세월호 일 년, 죄책감의 다음

죄책감이 추동하는 삶은 건강하지 않다고 여긴다. 과거에 붙들린 삶과 희생을 강요받는 삶을 갖게 될까 두렵다. 세월호를 바라보는 복잡한 심경에도 얼마간 저런 시선이 섞여 있었음을 고백한다. 군대에서 접한 참사여서 온전히 공감할 때를 놓쳤고 가쁘게 활동하는 친구들을 볼 때면 초라한 나를 더 숨겼다. 얕은 생각이었다. 진정 건강한 삶을 살고 싶었다면 죄책감을 탓하거나 그 연원을 따져 물어선 안 […]

시간이 모자란다. 그런데 그대는 도대체 왜 쓰는가?

1. 시간이 모자란다. 주말은 추웠다. 난방 돌리는 것도 잊고 드라마만 보다가 감기에 걸렸다. 소문대로 《펀치》는 재밌었다. 빠른 판단으로 전선을 바꿔 그리면서 싸우는 인물들을 보면 기분 좋은 울렁거림을 느꼈다. 가난한 가족과 당위 사이에서 갈등할 때 나는 기껏 에버노트 앱을 켜는데 드라마에선 일생을 건 도박을 벌였다. 한 편이 끝나면 불 꺼진 자취방은 환기가 덜 된 공기처럼 한심해졌다. […]

여느 21개월

여느 21개월이 지났다. 아마도 잊을 시간이다. 다행한 중에 다만 접어둘 기억들이 있어 기록을 남긴다. 1. 돌이켜보면 논산 훈련소를 견딜 수 있었던 건 적어도 군대만 끔찍한 건 아니라는 질 나쁜 확신이었다. 초소 너머 자유의 땅에도 억압들은 적당한 가면을 쓰고 자리하리란 생각이 있었다. 밤새 눈이 쌓여 천장이 코에 닿는 텐트에서 나올 때, 젖은 흙바닥과 손이 함께 얼어갈 […]

여름 동물

지난주의 일이다.  영등포에서 새벽 열차를 타고 부산에 도착한 후로 하루 넘게 샤워를 하지 않았었다. 끈적이는 날씨에 씻지 않는다는 건 꽤 큰 의지를 요구하는 나태다. 마땅히 해야 할 모든 의무에 어깃장을 놓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런 유치한 우울은 보통 사랑받지 못한다는 문제에서 비롯한다. 더 나은 애정이 필요했다. 구체적인 불만의 목록을 작성하지도 못하면서. 움직이기 싫었다. 그러나 종일 웅크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