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토의 노래들: Björk, Casker, Idiotape

곳곳에 명왕성 사진이 올라왔다. 9년 전 나사가 쏘아 올린 탐사선이 가까이에서 명왕성 사진을 찍은 덕분이다. ‘새로운 한계(New Horizons)’라는 이름의 탐사선이 그렇게나 빠르다든가, 그렇게 발견한 명왕성이 예상보다 크다든가, 유일하게 미국인이 발견했던 행성인 명왕성에 다시 미국이 도착했다든가 하는 말들은 별로 와 닿지 않았다. 과학에 과문한 탓이다. 대신 사진의 고즈넉한 색감을 곱씹었다. 태양에서 먼 탓에 잔뜩 얼어있는 표면, […]

더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 꽁치가: 이채, 『꽁치의 옷장엔 치마만 100개』

1. 어색하지 않은 다른 세상 『꽁치의 옷장엔 치마만 100개』는 치마를 좋아하는 남자아이 ‘꽁치’를 다룬 그림책이다. 책의 첫 장을 넘기면 “성소수자의 목소리를 담은 그림책”이란 소개 글이 보인다. 타당한 소개다. 치마를 좋아하는 남자아이는 분명 기대되는 성 역할을 어긴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충분한 소개는 아니다. 소수자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소개가 으레 연상시키는 전형적인 설정들을 대부분 따르지 […]

리퀴드 레이디의 살랑이는 사랑 노래: 장재인, 《LIQUID》

2010년 슈퍼스타K 2에서 3위를 차지하며 데뷔했다. 11년엔 첫 미니 음반을 냈고 12년엔 소속사를 옮겨 미니 음반을 하나 더 냈다. 13년 말에 미스틱 엔터테인먼트로 소속사를 옮겼고 병으로 활동을 쉬다 15년에 《LIQUID》를 냈다. 간간이 참여한 OST를 빼고 나면, 연도를 매겨가며 쓸 수 있는 장재인의 역사는 이 정도다. 이런 역사를 모른 채로 《LIQUID》를 들었지만, 곧 이 음반을 좋아하게 […]

다르게 쓰고 싶어졌다.

가능한 덜어내는 글쓰기를 배워왔다. 단어와 조사와 문장부호를 빼고 또 빼서 남은 글만이 필연적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쓰려고 애썼다. 오래 애썼더니 이제는 그렇게 쓰지 않는 게 더 낯설다. 그렇지 않은 글을 더 쓰기로 다짐했다. 다르게 쓰고 싶어졌다. 사람들은 사족을 붙여서라도 잘 읽히는 친절한 글을 원하기 때문이다. 세 문장을 한 문장에 압축한 글 말고 한 문장을 세 문장으로 […]

세월호라는 전쟁: 사실, 해석, 감상

1. 사실 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했다. 15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추모제가 열렸다. 18일에 열린 범국민대회에서 시민들은 서울광장에서 광화문까지 행진하려 했고 경찰은 이를 저지했다. 건조한 사실로서 기술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일 년은 짧지 않은 시간이어서 그간 쌓인 사실은 무수할 것이지만 그 중 이견 없이 받아들여지는 사실은 고작 이 정도다. 남은 것은 해석이다. 사실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