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21개월

여느 21개월이 지났다. 아마도 잊을 시간이다. 다행한 중에 다만 접어둘 기억들이 있어 기록을 남긴다. 1. 돌이켜보면 논산 훈련소를 견딜 수 있었던 건 적어도 군대만 끔찍한 건 아니라는 질 나쁜 확신이었다. 초소 너머 자유의 땅에도 억압들은 적당한 가면을 쓰고 자리하리란 생각이 있었다. 밤새 눈이 쌓여 천장이 코에 닿는 텐트에서 나올 때, 젖은 흙바닥과 손이 함께 얼어갈 […]

여름 동물

지난주의 일이다.  영등포에서 새벽 열차를 타고 부산에 도착한 후로 하루 넘게 샤워를 하지 않았었다. 끈적이는 날씨에 씻지 않는다는 건 꽤 큰 의지를 요구하는 나태다. 마땅히 해야 할 모든 의무에 어깃장을 놓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런 유치한 우울은 보통 사랑받지 못한다는 문제에서 비롯한다. 더 나은 애정이 필요했다. 구체적인 불만의 목록을 작성하지도 못하면서. 움직이기 싫었다. 그러나 종일 웅크리고 […]

납득 가능한 솔직함, 무례하지 않은 민낯

제 삶을 뻔하지 않은 말로 요약할 수 있다면 좋은 글이겠다. 전형적인 것을 무너뜨리는 납득 가능한 솔직함. 내겐 가라타니 고진의 대담집, 류이치 사카모토의 자서전이 그러했고 최근엔 이효리 씨의 블로그 글이 그랬다.  사람들 속에서도 그렇다. 일상적 만남을 유려하게 흐르도록 해주는 거짓들이 있고 진실을 고백하게 하는 적은 수의 사람들이 있다. 무례하지 않을 만큼의 민낯으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경험. […]

인상들이 움직인다. 패배한다.

토와 테이의 <Apple>을 들었다. 지난여름의 일이다. 몇 년 동안 나온 토와 테이 음반들은 만듦새만큼 듣는 게 재밌지 않았는데 이번 게 좋아서 쭉 다시 들어보니 이전 곡들도 괜찮다. 이 노래가 유독 잘 빠져선지 피쳐링이 시이나 링고라선지 알 수는 없지만, 아니 사실은 알 것도 같지만 아무튼. 이것저것 다 좋아하게 되었다. 통통대는 소리들이 더는 심심하게 들리지 않았다. 마음이 […]

미결인 채로 미움인 노래를

미운 사람이 많다. 싫은 것과는 좀 다른 기분인데, 따지자면 윤리적 판단의 함량이 더 적은 미적 판단이다. 대신 애증, 연민, 질투 따위의 건강하지 않은 마음이 섞여 있어서 덜 명료하고 더 사적이다. 이런 미운 사람들이 싫은 사람만큼이나 도처에 있으니 문제다. 예컨대 일베 유저는 싫고 깨어있는 시민들은 밉다. 콘돔 안 쓰는 게 자랑인 놈들이 싫다면 성 구매자들은 밉다.  […]